[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북ㆍ미ㆍ중ㆍ일ㆍ러. 가장 먼저, 가장 끝까지 한국 손을 들어줄 국가는 어디일까. 한일 관계에서 미국은 일본 대신 한국을 지지할까. 한반도 전쟁을 가정할 때 중국은 북한 대신 한국 편을 들어줄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하지만 오랜 한국 외교사에서 그 누구도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한 난제다.

한국 외교에서 ‘줄타기’는 숙명이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모두 얻거나’, ‘모두 잃을’ 줄타기를 피할 수 없다.

최근 북한 핵실험과 사드 배치 등으로 한국의 줄타기 외교는 고난도의 시험무대에 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한미일 관계는 한일 간 과거사 변수가 항상 도사리고, 한중러 관계는 북한과 사드가 걸렸다.

그나마 한국의 존재 가치를 부각시켰던 남북관계 역시 역대 최악의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동북아 정세를 보면, 모두 얻기보단 모두 잃을 위기가 커 보인다. 한국 외교가 가장 어려운 시험대에 올랐다는 이유다.

▶한미일 동맹? 韓日은 다르다 = 북한 핵실험 이후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난 구도는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다. 신(新)냉전 체제라고도 불린다. 북한 제재를 둘러싼 온도 차를 놓고도 양분된 흐름이다.

한미일 관계는 표면적으론 굳건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한일 관계의 특수성이 도사린다. 먼 얘기도 아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그렇다. 당시 주요 외교 현안은 미일 동맹 강화, 그리고 한국의 고립이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의 역할은 애매했다. 셔먼 미국 차관이 ”민족감정은 악용될 수 있고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 ‘값싼 박수’를 얻는 건 어렵지 않다”고 발언해 거센 파문을 일으킨 게 불과 1년 전이다. 실제 발언 의도를 떠나 이 말 한마디로 한미 관계는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 과거사는 미국 입장에선 한미일 동맹을 흔드는 걸림돌에 불과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과거사 문제는 한미일 동맹보다 우선할 수 있는 민족 감정의 과제다.

한미 관계가 미일 관계보다 ‘헐겁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한미 관계가 미일 관계보다 ‘공고하다’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지난해 한일 과거사가 불거졌을 때 일본의 편에 선다는 ‘오해’를 샀던 미국이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 한일 과거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미일 동맹의 신밀월관계에 따라,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1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역으로 그만큼 한일 관계에 따라 한미일 동맹은 언제든 위태로울 수 있다는 반증이다.

▶중러 관계? 中도 멀어졌다 =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국회 연설에서 “미국과의 공조는 물론, 한미일 3국간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와의 ‘연대’도 계속 중시해 나가겠다”고 했다. 협력과 연대의 미묘한 어감 차다. 한미일을 하나로 묶고, 중국과 러시아를 또 다른 하나로 묶은 점도 의미심장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가장 높은 외교적 성과로 꼽혔다. 미국 내에서 ‘중국경사론’이 불거질 정도였다.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을 더 우선시한다는 불만이었다. 지난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옆 2번째 자리에 앉을 만큼 극진한 예우를 받았던 박 대통령이다.

미국의 불편한 심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한국이 중국 주도의 경제 협력체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가입에 중국은 “크게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미국은 “각국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말을 아꼈다. 중국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사드 배치 역시 한국은 3무(無) 원칙을 고수해왔다.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는 답이다.

1년 뒤 분위기는 급변하고 있다. 대북제재에 따른 온도 차도 원인이지만, 가장 큰 변수는 사드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한중 관계는 급격히 냉랭해졌다. 중국 관영언론인 환구시보는 최근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한국은 독립성을 더 잃게 되고 국가 지위에 엄중한 악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격한 냉온탕이다. 사드 문제가 걸려 있는 한 한중관계의 돌파구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북 외교 주도권도 韓 손 떠나…美中 손에 =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켜준 건 역으로 북한이다. 남북관계를 바탕으로 한국이 동북아 외교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구상은 역대 정권마다 내세운 전략이다. 박 대통령 역시 ‘통일대박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의 대북 정책을 앞세웠다. 동북아에서 대북 외교를 주도할 국가는 한국이란 가정이 깔렸다.

결과적으로 이제 대북정책의 키는 한국 손을 떠난 형국이다. 개성공단을 폐쇄하며 남북 간 소통 창구가 모두 닫혔고, 이제 대북정책은 중국, 미국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사실상 동북아 대북정책을 주도할 카드도 없다. 대북제재는 중국의 동참 여부가 관건이고, 대북 군사 압박은 미국이 주도하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체제 붕괴”까지 거론하며 강경하게 나섰지만, 활용가능한 카드 대부분은 사실상 중국, 미국의 손에 달렸다.

한국은 중국, 러시아를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하게 북한과 소통이 가능했던 국가다. 이는 중국ㆍ러시아에도 미국ㆍ일본에도 활용가치가 높은 카드였다. 이젠 이 같은 프리미엄도 사라졌다.

결국 한국의 줄타기 외교는 미국, 중국, 북한 어디에도 좀처럼 기대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 북핵사태가 몰고 온 한국외교의 또 다른 시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