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귀공자 이미지는 TV가 만든 것 부모님 별거로 17년만에 가족들 재회 빨리 철든 덕에 배역 이해폭 넓어져 아직도 100% 이길이 내길인가 고민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믿음 잘맞는 배역? ‘나쁜녀석들’ 사이코패스 ‘치인트’ 최고장면? 홍설 집 앨범대화

따라다니는 수사는 ‘만찢남’이다.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는 뜻이다. 주로 ‘유정 선배’라고 불린다. tvN 월화드라마를 존폐 위기에서 건진 ‘구원투수’. 통쾌한 한 방이었다. 제작단계부터 캐스팅 논란에 꽤나 시끌벅적했던 드라마였다. 뚜껑을 열자 논란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tvN 월화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7%대)을 기록했다.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가인 약 200만 달러(24억원)에 판권이 팔렸다. 회당 12만5000달러 수준이다. 국내외를 넘나든 성공의 팔 할은 박해진이었다. 2011년 중국 후난위성TV에서 방송된 ‘첸더더의 결혼이야기’를 통해 그는 한류스타로 떠올랐다.

드라마는 한창 방영 중이지만, 이미 모든 촬영을 끝낸 박해진을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해진은 ‘유정 선배’처럼 차분했다. 한 글자씩 곱씹어 내놓은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긴 문장 안에 담는다. 조리있게 생각을 전할 줄 아는 능숙한 인터뷰이다. 종종 웃지만 감정이 완전히 드러나진 않는 모습까지 ‘유정 선배’를 닮았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요. 정확한 발음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면 답답하잖아요. 그래서 책도 많이 보고요.”

‘치즈 인 더 트랩’은 몇 번이나 고사했던 작품이다. 나이도 걸렸다. 30대에 연기하는 풋풋한 대학생, “캠퍼스를 소재로 한 소소한 이야기”인데다, “여백이 많고,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룬 웹툰”은 “2D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웹툰의 빈 공간을 영상으로 채우고, 인물들의 내면을 연기로 표현하는 과정은 오롯이 배우의 몫이다. “배우는 대본에 없는 걸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대본도 중요하죠. 대본을 토대로 장면 안에서 얼마나 살아 움직이느냐를 고민해야 해요. 하지만 좋은 대본을 줘도 다 표현해내지 못한다면 완벽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예요.”

박해진이 연기하는 ‘유정 선배’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모두에게 다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마음을 쉽사리 간파할 수 없는 사람. ‘유정’을 만들기 위해 박해진은 굳이 과장된 행동과 표정을 연기하진 않는다. 작은 손짓, 고개의 움직임, 눈빛의 미세한 변화만으로 웹툰 속 유정을 TV로 옮겼다.

“연기를 할 때 항상 그렇게 배웠어요. 모든 신, 모든 상황에서 죽지 말고 살아있어라. 내가 여기서 어떠한 말을 뱉는 것, 왜 여기서 하필이면 이 말을 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는 거죠. 아무 의미 없이 말을 하고, 행동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니, 그 신 안에서 살아있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어느새 연기경력 10년차에 접어들었다. 2006년 데뷔해 써내려간 필모그래피 만큼 내공도 쌓였다. 숱한 작품 중 박해진이 꼽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작품은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이었다. 천재 싸이코패스였던 연쇄살인범. 역시나 속을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인물이다. 박해진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순간부터 그리 순탄한 삶을 살아온 건 아니라서, 감정이입이 잘 됐던 것 같아요. 평소에도 모든 상황에 골똘히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요.”

어떤 캐릭터의 영향인지, 박해진에겐 잘 자란 귀공자 이미지가 컸다. 그에게서 ’치인트‘의 유정 선배처럼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모든 걸 잘 해내는 완벽남의 모습을 찾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늘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있어요. ‘내가 없이 자라서…’ 하하.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진 않았어요. 제가 기억하는 저희 집의 첫 시작은 단칸방이었어요. 아! 우물도 있었어요. 방 하나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가 모여살았죠. 순탄했거나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어요.”

담담히 꺼내는 지난 이야기엔 박해진이 말하는 ‘순탄치 않은 삶’이 녹아있었다. “저한텐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별거를 한 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보호자는 세 번이나 달라졌다. 아버지와 살다가 외할머니의 집으로 갔고, 다시 친할머니와 살게 됐다. 어머니와는 17년 만에 다시 만났다. 지금은 어머니는 물론 누나와 매형, 조카들까지 함께 살고 있다.

TV가 만든 이미지의 힘은 강하다. 박해진은 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준비를 잘 해와 데뷔를 하고, 생계 때문이 아닌 좋은 작품들을 해왔던 배우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박해진이 만난 최근의 인물들은 내면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있었다. 부모의 그늘을 어린 나이에 벗어나야 했다. 모든 걸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너무 빨리 철이 들었던 성장과정, 그로 인해 30대 초반의 또래들보다 더 많은 굴곡을 넘어온 삶은 배우 박해진이 다양한 인간군상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줬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한 기회에 첫 시작을 했죠. 아직도 이게 100% 내 길인가에 대한 고민은 있어요. 다만 지금 하는 일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한창 흥미를 느끼는 때인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연기, 캐릭터에 대해 신뢰하지 않으면 그 어떤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설득력 있는, 자신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배우. 그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에요.”

드라마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다. 박해진은 ‘홍설’의 집에서 앨범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을 꼽았다. 애드리브가 홍수를 이뤘던 신이다. “너야? 어릴 때 눈이 컸구나” 이런 대사가 그랬다. 정작 박해진의 목소리가 높아진 건 ‘유정이 게임 도중 설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였다.

“게임 좋아하는 사람 만나본 적 있으세요? 게임을 하다가 답장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유정은 게임을 하다가 감히 핸드폰으로 설이에게 답장을 했어요. 핸드폰을 던지는 모습이 귀찮아서 저러나 싶을 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설이에게 답장을 했다는 것이 포인트예요.” 박해진의 얼굴에 가장 많은 변화가 읽힌 때였다. 정작 박해진은 게임을 할 줄도 모른다고 한다. 천생 배우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