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전사 흔들림 줄이려 막대한 투자 中제품보다 비싸 와인 맛도 최적의 냉장환경서 판가름
38년 전 쯤이다. 가족들이 난생 처음 본 국산 세탁기에 놀란 건 생김새나 성능이 아니었다. 진동과 소음이었다.
당시 세탁기는 지금과는 달리 세탁 칸과 탈수 칸이 따로 마련 돼 있었다. 그런데 세탁을 할 때나 탈수를 할 때마다 진동과 소음이 요란했다. 세탁기의 모터 회전소리가 굉음을 쏟아낸 탓이었다. 세탁기의 존재감(?)에 온 가족이 신경 거슬려한다는 것을 눈치챈 어머니는 그래서 다시 손빨래를 택하셨다. 모두 옛날 얘기다.
시간의 흐름이 기술의 진보로 이어졌다. 국내 가전사들은 소음과 진동 줄이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진동과 소음의 발생 원인인 모터와 컴프레서 제조기술을 혁신하는 것이 연구개발의 핵심 포인트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국내 가전제품 제조업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모터’와 ‘컴프레서’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모양새는 혁명이랄 수 있을만치 크게 변했다. 세탁과 탈수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체형으로 변한지 오래다.
드럼세탁기와 일반 통돌이 세탁기를 하나로 결합한 제품까지 등장했다. LG전자의 ‘트롬 트윈워시’가 바로 이 제품이다. 이 세탁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진동 문제를 해결한 핵심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윈워시 세탁기 개발의 최대 관건은 공진(共振·resonance) 현상을 제어하는 것. 트윈워시의 위쪽 드럼 세탁통은 수직 방향으로, 아래쪽 통돌이 세탁통은 수평 방향으로 동시에 회전한다. 상하 두 세탁기가 작동하면 각각 진동이 발생하는데, 이 진동이 합쳐져 공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공진이란 단위 시간당 흔들리는 횟수가 서로 같은 진동이 만나면 진동이 점점 증폭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럴 경우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세탁기가 넘어질 수 있고, 세탁기를 시멘트 바닥에 볼트로 고정시켜도 바닥이 뜯겨 나갈 수 있다.
LG전자는 ‘댐퍼(damper)’라는 진동 에너지 흡수장치의 성능을 높여 두 세탁통의 진동이 전달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기술은 독보적이어서 당분간 LG가 기술우위를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중국의 한 가전회사는 드럼세탁기 2대를 동시에 가동할 수 있는 듀얼 드럼세탁기를 개발해 올 상반기에 선보였지만 진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소비자를 만족시키는데 실패했다. 아래, 위 드럼세탁기를 동시에 가동할 수는 있지만, 진동을 잡지 못해 두 드럼세탁기의 동시 탈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와인 냉장고에도 진동의 비밀이 숨어 있다. 진동의 크기가 가치의 크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와인은 병 속에서도 숙성되는 술로, 온도나 습도 같은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맛이 변한다. 여기까지는 상식이다. 그런데 와인은 온도와 습도 뿐 아니라 진동의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다. 진동이 심하면 와인 숙성이 촉진돼 맛이 변하게 된다. 따라서 좋은 와인을 마시려면 온도, 습도 등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진동이 덜한 와인 냉장고를 선택하는 것이 필수다. 1도 단위의 미세한 온도 조절이 가능하면서 일정한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와인 냉장고, 진동이 거의 없는 와인 냉장고를 택해야 한다.
같은 용량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으면서도 국산 와인셀러의 가격이 중국산 와인셀러 가격보다 2배나 비싼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윤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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