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국회의 직무유기가 도를 넘었다. 합의의 정치는 사라지고 그저 핑계와 남 탓뿐이다.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선거구 획정은 결국 법정 시한을 넘겼다. 연이어 여야 지도부가 만났지만 시간만 허비했다. 입법부 스스로, 또 공개적으로 위법을 자행한 꼴이다.
내년 국가의 곳간을 책임질 예산안도 직무유기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에 혈안이 된 국회는 졸속 심사를 자처하고 있다. 한 달 만에 열린 본회의도 형식적인 법안만 처리하고서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됐다. 이쯤 되면, ‘신이 내린 직장’도 머쓱할 만한, ‘국민이 선사한 직장’이다.
결국 국회는 법을 어겼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내년 총선 선거구획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야 할 법적 시한이 13일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모양새’는 갖췄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사흘 연속 마라톤협상을 벌였다. 심야 회동도 강행했다. 결론은 없다. 마치 노력만은 할 만큼 했다는 ‘자기위안’ 격이다.
남 탓이 난무했다. 협상 결렬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에 바빴다. 농어촌 지역구 축소, 비례대표 수 조율 등이 얽히면서 애초부터 의원 본인들의 양보와 희생이 전제되지 않는 한 협상은 불가능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2일 회동 이후 “농어촌 지역구 의석이 줄어드는 걸 최소화하고 비례대표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야당이 안 받아들이고 있다”며 야당에 책임을 물었다.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선진화법까지 포함해 논의하겠다고 했는데, 여당이 다 무위로 하자고 했다”고 여당을 비판했다. 여야 할 것 없는 남 탓이다.
선거구 획정으로 시작한 협상은 상대방이 받을 수 없는 카드를 연이어 제시하는 무리수로 비화됐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요구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고 투표 마감시간도 연장하는 안을 추가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난만 할 뿐 책임은 없는, 여야의 ‘암묵적 카르텔’ 속에 결국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수는 현행 246+54석이 유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치개혁이란 이름 아래 시간만 보내다 그냥 ‘현행대로’ 돌아왔다.
지난 12일 한 달 만에 열린 본회의는 형식적인 법안만 통과시킨 채 2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마무리됐다. 국정교과서로 파행을 겪고서 한 달 만에 열린 본회의였다. 무쟁점 법안 37건을 포함해 국회 국토위원장ㆍ중앙선관위원 선출 건,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기간 연장 등만 겨우 처리했다.
정작 양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노동개혁 법안, 경제활성화 법안, 누리과정 예산 법안, 전ㆍ월세난 대책 법안 등은 뒷전으로 밀렸다. 생색내기용이다. 양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갖가지 과제와 개혁은 말만 화려했을 뿐 실체가 없다. 상대당의 입법과제엔 반대로 일관하고 내 목소리만 높인다. 여야는 언제 다시 본회의를 개최할지도 합의하지 못했다.
연말 국회의 최대 과제인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예산 세부내역을 다루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 한 명이라도 더 넣으려는 여야의 셈법으로 예산안 일정 전체가 가로막힌 상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 확보에 혈안이 된 국회의원들의 현주소다. 1964년 9명으로 출발한 소위는 현재 15명까지 늘었고, 여야는 추가로 17명까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인원이 늘고 그만큼 이해관계가 얽힌 요구도 늘어나니 예산안 심사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심사가 부실해질수록 슬그머니 민원성 예산을 끼워넣기도 수월하다. 내년 나라 곳간은 387조원에 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