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위, 국회 눈치보느라 지역구 의석수 발표 못해 -헌정 사상 최초 독립기구 취지 무색…여야 이견에 ‘갈팡질팡’ -정당 추천 획정위원 ‘여야 대리인’으로…4대4 팽팽한 신경전 -국회, 획정안 수정권한 없어…본회의 부결 시 이후 규정은 無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를 벗어나 독립기구로 꾸려진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가 ‘여의도 입김’에 휘둘리며 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농어촌 지역 의석수를 보장하면서도 (여당) 비례대표는 줄이면 안되고 (야당) 헌재가 판결한 인구 편차 비율 2대 1까지 지키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다.
국회가 스스로 획정위를 독립화시켜놓고 선거구 획정 시한이 임박하자 유ㆍ불리를 따지며 획정위를 흔들고 있다. 당초 획정위원 추천 권한을 정당이 가진 자체가 독립성 훼손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5일 국회 정개특위에 따르면 지난 5월 6일 여야는 본회를 열어 선거구획정위를 중앙선관위 산하 독립기구로 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237인 중 233인이 찬성했다. 반대는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유일했다.
국회는 획정위가 마련한 획정안에 대한 국회의 수정권한까지 포기했다. 기존 법에서는 획정위가 일단 국회 소속이었고, 획정위 결정을 ‘존중한다’고만 돼 있어 국회가 획정안을 뜯어고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한 꼴이 됐다. 정개특위는 지난 7월 획정위원 추천 주체에 정당을 포함시키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같은 규정에 따라 9명의 위원이 구성됐다. 중앙선관위가 추천한 김대년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 8명이 사실상 여야 추천 4명씩으로 갈린다.
정개특위가 공개한 내용으로는 가상준 단국대 교수, 강경태 신라대 교수만 새누리당 추천이며 새정치연합은 공정성 시비 우려를 이유로 추천을 하지 않았다고 돼 있다. 하지만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이준한 인천대 교수(한국정당학회), 조성대 한신대 교수(참여연대), 차정인 부산대 교수(대한변협 추천) 등 4명은 야당 몫으로 추천된 인사들로 꼽힌다. 나머지 김동욱 서울대 교수(한국행정학회), 한표환 충남대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는 여당 성향으로 분류된다.
획정위가 지난 2일 회의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246석으로 가닥을 잡고도 지역 배분에서 의견을 좁히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위원들이 사실상 ‘여야 대리인’을 자처하며 서로의 주장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사실 독립성에 대한 우려는 정개특위 논의 시점부터 제기됐다. 획정위원 구성이 정해지기 전인 지난 5월 정개특위 공청회에 참석한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정개특위 대안을 보면 여전히 정당 추천이 존재하는데,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개특위원인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도 “여야의 대리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외부인사 추천을 3명 정도로 하는 것이 취지에 맞을 것”이라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획정위는 획정안 제출 시한인 13일은 반드시 지킨다는 입장이다. 국회는 획정위가 제출한 획정안이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에 단 1회(2/3찬성)에 한해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하면 획정위는 10일 안에 다시 획정안을 제출해야 한다. 법사위도 획정안 내용은 물론 자구도 수정할 수 없다.
문제는 본회의다. 물론 본회의도 획정안 내용을 수정할 권한은 없다. 바로 표결에 들어가는데 부결이 된다면 그 이후 규정은 전무하다. 이제까지 획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획정위가 국회 내에 있었던 만큼 본회의 상정 전에 이미 뜯어 고쳐놓은 터라 국회가 원하는 방향대로 획정안이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획정위 관계자는 “본회의 부결 이후의 규정은 정해진 것이 없다. 정개특위가 법안 통과 의지를 보인 것인지 아니면 (이 부분까지는) 생각을 못한 것인진 모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