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국기는 녹색바탕에 글자들과 칼로 구성된다. 글의 내용은 이슬람교의 신앙 고백인 ‘샤하다(Shahdah)’로 뜻은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이다. 그 아래 칼은 알라와 무함바드의 뜻을 관철시키는 수단을 상징한다. 순수 이슬람으로 이단을 용서하지 않는 건국철학을 잘 담고 있다.

2002년 국립경찰은 여중생들의 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화마에 뒤덮인 학생들을 구조하지 않았다. 외간 남자와 채팅을 하던 10대 소녀가 아버지에 의해 살해됐을 때도 대중들은 아버지의 편을 들었다. 코란에 입각한 엄격한 이슬람 규율, ‘와하비즘(Wahhabism)’이 지배하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다.

종교의 나라인 만큼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실상 제정일치로 이뤄진 건국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국가(國歌)도 ‘군주를 찬양하라’이다.

18세기 사우디 반도 중부 ‘네즈드’ 지방을 지배하던 사우드 가문의 지도자였던 무함마드 빈 이븐 사우드는 철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다. 그는 ‘와하비즘’을 창시한 무함마드 빈 압델 와하브가 1744년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알 디리야로 거쳐를 옮기자 가르침을 청한다. 그리고 와하비즘에 입각한 국가를 통치하겠다는 협정(Bayat)을 맺는다.

압델 와하브가 창시한 ‘와하비즘은 ‘순수’한 이슬람을 따르지 않은 무슬림은 이단자로 분류하고 이들에 대한 정복을 정당화했다. 사우드 가문에 따르지 않는 다른 반도의 부족들을 무력으로 통합할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와하비즘’으로 무장했던 사우드 가문의 반도 통일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왕국 초대 국왕인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이븐 사우드 국왕)가 태어난 1880년 당시 사우드 가문은 반도 북쪽을 지배하는 알 라쉬드 가문과 패권을 두고 맞섰다.

하지만 이븐 사우드 국왕의 아버지 압둘라흐만 빈 파이살 빈 투르키는 알 라쉬드 가문에 패한다. 이후 사우드 가문은 10년여간 쿠웨이트 등에 몸을 의탁하며 난민과 다른 없는 처지를 겪는다.

하지만 1901년 20세 청년이던 이븐 사우드가 와하비즘으로 무장한 불과 200여명의‘특공대’로 라쉬드 가문이 장악한 리야드를 탈환하는 ‘기적’을 이루면서 전세는 역전된다. 반도 곳곳의 부족에서 신앙심으로 충만한 이들이 사우드 가문을 따르기 시작했고, 사우드 가문은 빠른 속도로 힘을 되찾는다.

반면 사우드 가문에 밀린 알 라쉬드 가문은 오스만제국과 손을 잡는다. 사우드 가문은 이에 대항하기 오스만을 견제하고 싶던 영국과 힘을 합친다. 영국은 사우드 가문을 보호해 주고, 사우드 가문은 오스만과 싸우기로 약속한 것이 1915년의 ‘다린 조약’이다. 유명한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의 배경이 바로 사우드와 오스만의 중동전쟁이다.

다린 조약은 이후 사우디를 영국과 미국 등 서방세계와 연결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븐 사우드는 마오저뚱을 연상케하는 게릴라 전술과 헌신적인 신앙심으로 똘똘뭉친 특공대 ‘이콴’에 힘입어 1927년 영국에서 독립하고, 1931년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다. 와하비 포교단을 반도 구석구석까지 보내 사상적 통일까이 이뤄낸 이븐 사우드는 193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왕국의 건국을 공식 선포했다.

문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