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동서 분열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가 이번엔 ‘언어’ 때문에 둘로 쪼개지고 있다. 키예프 등 친서방 성향이 강한 서부 지역에선 러시아어가 자취를 감췄다. 극도에 달한 반러 감정이 국민들이 쓰는 언어에까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어 사라진 키예프=11일(현지시간) AFP통신은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2개 국어를 사용하며 상황에 따라 언어를 바꿔 써왔다”면서 “친유럽 정부가 들어서고 러시아군이 크림반도를 장악한 이후, 이제 언어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문제”라고 보도했다.

실제 수도 키예프에선 우크라이나어만 사용하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이달 초 러시아 의회가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을 승인한 직후 이 같은 추세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러시아어를 쓰지 않는 것이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저명 사회학자인 이리나 베케시키나 민주이니셔티프재단(DIF) 대표는 이에 대해 “정치학에서 언어 사용은 ‘내 편 아니면 적’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키예프 시민들의 우크라이나어 사용이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읽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인 언어도 ‘양극화’=언어의 ‘양극화’ 현상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친서방 야권 세력에 의해 축출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과 옛 집권당인 지역당 소속 의원들은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러시아어권 동부 도시 도네츠크 출신인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지난 2010년 러시아어를 ‘제2공식언어’로 지정하는 법안을 추진한 바 있다.

반면 야권 세력의 ‘아이콘’인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는 평소 러시아어를 쓰지만,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면 러시아어 사용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민족주의 성향의 야당인 ‘스보보다’(자유당) 당수 올렉 탸그니복도 지난달 러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어 통역을 요구, 공석에서 직접 러시아어를 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아울러 오는 5월 대선에 출마할 예정인 드미트로 야로시 ‘프라비 섹토르’(라이트 섹터) 당수도 AFP에 러시아어를 쓰지 않겠다고 전했다. 프라비 섹토르는 반러를 앞세운 극우 성향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