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정(鄭)나라에 백유(伯有)라는 재상이 있었다. 거만한 성격에 술을 좋아했다. 집 지하실에는 전용공간을 두고 술 마실 때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약소국이던 정나라는 강대국인 진(晉)과 초(楚) 사이에 끼어 외교가 매우 중요했다. 어느날 군주 간공(簡公)은 초나라로 보낼 사신을 선발하려 한다. 재상인 백유와 상의해 유력한 귀족 공손흑(公孫黑)을 내정한다.
당시 공손흑은 다른 남자와 약혼한 여인을 빼앗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었다. 수개월이 걸릴 사신 임무를 수행하다 자칫 이 여인을 영영 빼앗길까 걱정됐다. 고심 끝에 사신 임무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공손흑이 찾았을 때 하필 백유는 지하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면회불가였다. 다급해진 공손흑은 “어찌 이런 자가 나라의 재상일 수 있는가?”라며 가병(家兵)을 동원, 반란을 일으킨다.
문 걸고 술 마시며 나랏일을 소홀히 한 백유나, 불륜 때문에 반란까지 일으킨 공손흑이나 관료로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백유를 비난하는 공손흑의 모습이 우습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보다 250년 앞선 얘기다.
세계 경제에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중국이 마침내 공기업 개혁을 선언했다. 옥석을 가려 통폐합하고, 민간자본을 참여시켜 재무건전성과 경영투명성을 모두 높이겠다는 내용이다. 단, 경영권은 공산당이 갖는다.
밖의 평가는 ‘이만한 게 어디냐’와 ‘이런 게 뭐 개혁이냐”로 나뉜다.
전자(前者)는 그래도 시장과 민간의 참여를 늘린 것은 진일보라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싱가포르의 테마섹홀딩스에 비교하며, ‘국가자본주의’의 또 다른 기대모델로 치켜세운다.
반면 후자는 소유권은 당이 갖고, 민간은 돈만 내라는 건 민영화도 아니고, 시장의 룰(rule)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소규모 도시국가로 금융시장이 개방된 싱가포르와의 비교도 무리라고 꼬집는다. 중국은 대륙국가이고, 자본이동은 강력히 통제되기 때문이다. 이번 개혁안은 중국의 지향점이 시장 자본주의가 아니라 ‘당 자본주의’ 임을 새삼 확인했다는 논리다.
국가자본주의는 국가가 최우이다. 당 자본주의에서는 공산당의 가치가 최우선이다. 문제는 이런 가치들이 시장과 충돌할 때다. 시장의 룰이 적용된다면 ‘시장’의 기능은 유지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권력과 힘이 지배하는 ‘광장’으로 전락한다.
그 동안 중국 정부가 외환시장과 증시 개입한 방식을 보면 중국은 아직 ‘시장’ 보다 ‘광장’에 가까워 보인다. 민간이 아무리 참여해도, 당을 힘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줄이면 중국의 이번 공기업 개혁방안이 투자자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중국 비합리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백유-공손흑 얘기와 닮았다. 우리 시장도 룰이 지배하는 곳처럼 보이지만, 기저에는 그 보다 더 강한 힘이 지배하는 ‘광장’도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