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사고’ 진상조사단 구성…‘용산참사 백서’ 제작 착수 -위원회 대부분 진보측 인사로 구성 객관성ㆍ공정성 상실 -비공개에 간사도 서울시가 맡아 박시장 입맛대로 운영 우려

[헤럴드경제=최진성 기자] 서울시가 사회적 합의로 마무리된 ‘용산사고’에 대해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사고 원인을 재규명키로 하면서 또다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백서 제작을 골자로 한 ‘용산참사 기록화사업’에 사법적 판단까지 더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넘어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13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용산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기록화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시는 이달 초 민ㆍ관 인사가 참여하는 ‘기억과 성찰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백서 제작에 들어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월 용산사고 6주기 추모행사에서 기록화사업을 발표한지 반년만이다.

서울시 “사법부 못 믿겠다”…‘용산참사’ 재규명

용산사고는 지난 2009년 1월20일 LS용산타워 일대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보상대책에 반발한 세입자들이 남일당 건물(한강로2가)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다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친 사건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은 평소 용산사고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져왔다. 박 시장은 ‘기억과 성찰위원회’ 첫 회의에 직접 참석해 용산사고의 의미와 기록화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억과 성찰위원회는 이날 첫회의에서 ‘용산사고’를 ‘용산참사’로 규정하고 세입자 대책뿐만 아니라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짚어보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용산참사의 재발을 막고자 재개발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면서 “사회적 약자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않고 실제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서는 용산참사 7주기를 맞는 내년 1월께 출간될 예정이다.

문제는 서울시가 기록화사업을 명분으로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사고 원인을 재규명하겠다는 데 있다.

용산참사는 당시 검찰이 사고 발생 3주만에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1년 가까이 끌어온 법정 공방 끝에 2010년 1월 보상대책에 최종 합의하고 세입자들이 이주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서울시는 기억과 성찰위원회를 통해 검찰 수사결과를 재평가하고 백서에 기록으로 남기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1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서울연구원 한국도시연구소에 기록화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 사회적 합의를 통째로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부실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도 위원회를 앞세워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위원회 내에서도 “경찰 진압 등 사법적인 부분은 정당성 등에 대한 다양한 견해 차가 있다”는 이견이 나왔다.

위원회 인적 구성 측면에서도 용산참사를 재조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유남영 전 국가인권위원장과 용산참사 변호를 맡았던 박승진 변호사,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시민단체인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 등 진보 성향 인사로 구성되고 당시 진압을 맡았던 경찰측은 배제돼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위원회를 이끌어가는 간사도 서울시(도시활성화과장)가 맡아 사실상 서울시 입맛대로 위원회가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시는 이례적으로 위원회를 비공개 운영키로 하고 논의 사항도 보안을 유지하기로 했다.

ipen@heraldcorp.com

<용산참사 일지>

2007년 5월 용산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시행인가

2009년 1월19일 4구역 철거민 30여명 남일당 건물 농성

1월20일 경찰특공대 진입, 철거민 5명ㆍ경찰 1명 사망

10월28일 서울중앙지법, 철거민 전원 유죄 판결

12월30일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용산4구역재개발조합 측과 합의

2010년 1월 철거민 23가구 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