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을 맡고 있는 거래소는 시장에 의해 평가되어야 합니다.”

지난 가을, 서울을 방문한 사이토 일본거래소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 주식시장은 상장기업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3대 거래소에 들지만 오랜 기간 거래부진으로 고전했다. 그런 일본시장이 빠르게 활력을 회복해 15년만에 니케이 주가지수 2만을 쳤다. 시장의 부활에는 양적금융완화, 소액투자세액공제(NISA)제도와 같은 정부정책 외에 일본거래소의 통합·상장도 큰 역할을 했다.

2013년 1월, 일본거래소는 130년간 경쟁관계에 있던 도쿄증권거래소와 오사카 거래소를 통합하고 곧 바로 상장(IPO)까지 마쳤다. 경영통합은 전산 시스템 운영·유지비의 대폭적인 삭감과 인재의 효율적인 활용 등을 가져왔다. 여기에 거래소 주식의 상장은 거래소 뿐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변화시켰다.

일본 언론은 IPO이후 거래소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오랜 기간 ‘관료보다도 더 관료적’이란 비난을 받아왔다. 국내에서는 거의 독점에 가까워 가만히 앉아있어도 기업과 투자가들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장 감시라는 공적인 역할도 있어 직원들은 공무원 체질이 몸에 배어있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직원들의 ‘슬리퍼 문화’였다. 굳이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고객이 알아서 찾아왔기 때문에 많은 직원들은 슬리퍼를 신고 근무했다. 그런데 상장을 많이 시켜야 주가가 오르고, 주가가 올라야 거래소의 기업가치도 오르기 때문에 직원들은 상장유치를 위해 전국을 분주하게 뛰어 다니게 된 것이다.

또 거래소는 기업 상장으로 생긴 여유자금으로 국제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거래소는 ‘이제 경쟁상대는 세계다’라는 인식하에 전 세계 투자자들이 값싸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상품군을 다양화하고 전용 통신망을 확대하고 있다. 해외상품에 투자하고 싶다는 국내투자자들을 위해 해외주식, 상장지수펀드(ETF) 등 상품군을 다양화시키는 한편,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본주식관련 상품을 해외거래소에 상장시키는 작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또 해외 전용망 확대를 위한 투자를 늘려 원격지 회원과 코로케이션 이용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 4월, 일본과 싱가폴 양 거래소의 코로케이션을 직접 연결하는 통신망도 개통했다.

거래소의 주인은 상장사, 투자자, 주주들일 것이다. 거래소에 대한 이들의 평가는 시장을 통해 매일 주가에 반영된다. 주가라는 분명한 목표와 평가지표는 거래소를 열심히 뛰게 만든다. 낮은 생산성과 관료주의로 비난받아 온 일본 거래소, ‘시장에 의한 평가’라는 주식상장과 구조개편을 통해 일거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