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뉴타운 심의위원…고은복 공인중개사
“주민들 생활 극도로 피폐해져 가능성없는 뉴타운은 해제를”
“원래 공인중개사는 뉴타운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ㆍ뉴타운 개발을 반대하는 조합원 모임) 활동을 하면 안 됩니다. 손해만 보니까요. 그래도 소신껏 비대위 활동을 하다 보니 돈은 못 벌었어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공인중개사로 활동 중인 고은복(56·사진) 씨는 2000년대 초 재개발 사업이 유망할 것으로 보고 현재의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앞서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택지를 매입하고 아파트 분양도 해봤다. 회사 재직 중이던 1985년 우연한 기회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해 회사에서도 밀어주는 부동산전문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퇴사 후 부동산 투자에도 안목이 트였다. 신중한 고려 끝에 재개발 지분을 매입했다. 이윽고 개발의 물결이 밀려왔다. 뉴타운 열풍이 불었다. 열이면 열 모두 뉴타운을 일확천금의 기회로 여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부동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남들보다 일찍 이상 징후를 포착했다.
뉴타운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측 주장이 현실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대로라면 조합원들의 손해가 불 보듯 뻔했다. 여러 차례 추진위 측과의 대화를 제안했지만 진지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개발 열풍이 불어 모두 개발을 외치고 있는 마당에 홀로 반대를 외치며 외로움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싸움은 힘겨웠다. 1대 다수의 싸움이었다. 그의 싸움은 논리 쌓기로 시작됐다. 사안마다 추진위 측 주장의 진위를 묻는 공문을 구청, 시청으로 보내 답변자료를 모았다. 이런 자료가 나중에 조합원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차츰 개발 반대에 동조하는 조합원들의 수가 늘었다. 추진위 설립은 전체 조합원의 50%의 동의서를, 조합 설립은 75%를 모아야 한다. 그는 현재 27%의 조합원들로부터 동의서를 내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상태다. 이대로라면 해당 구역의 조합 설립은 요원하다. 그리고 전체 조합원 중 절반가량이 개발 반대자로 돌아섰다. 1대 다수의 싸움이 50대 50의 싸움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설득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일부 극단적인 비대위 활동도 경계한다. “주민 간에 개발 찬성, 반대를 놓고 감정이 격해지다 보니 욕설,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그래 봤자 실익이 없어요. 서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푸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분명히 대화로 ‘윈-윈’할 수 있는 해결점을 찾을 수 있거든요.”
최근 그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모범 뉴타운 선정 작업에 민간 심의위원으로 위촉됐다. 뉴타운 모범구역에는 저리 융자, 사업비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 위한 것이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뉴타운에 대한 대책 마련도 향후 시의 필수적 과제가 될 전망이다.
그는 “진행되지도 않는 뉴타운 때문에 약 10여년간 주민 간 분쟁, 재산가치 하락 등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극도로 피폐해졌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가능성 있는 뉴타운은 적극 지원해주고, 가능성 없는 뉴타운은 해제를 수월하게 하는 법 개정이 시급해 보인다”고 힘줘 말했다.
김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