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는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도시가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인간 활동과 인류 문명의 중요한 산물임을 의미한다. 도시는 초기에는 비(非)농업인들이 농촌의 잉여 생산물에 의존해 유지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산성 향상과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지며 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도 “도시는 주변의 작은 도시 및 외곽 지역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확장된다”고 말하며, 도시가 단순한 인구의 집합체가 아닌 인류 발전의 중요한 축임을 강조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는 노동력의 집중과 부의 창출의 원천이 됐지만, 동시에 인구 밀집과 주거환경 악화라는 문제도 나타났다. 초기에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물리적인 인프라 확충이 이뤄졌지만, 20세기 들어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더 이상의 인프라 공급이 어려워졌고, 기술을 통한 혁신적인 해법이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출현한 것이 스마트시티 개념이다.
스마트시티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자원 낭비와 교통 혼잡 같은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도시모델로, 199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도입됐다. 교통 혼잡 해소를 위해 도로 확장보다는 실시간 교통정보를 수집해 우회도로를 제시하거나 신호체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스마트시티 사업은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 중이며, 각국은 경제·사회적 특성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키고 있다. MarketsandMarkets의 2024년 4월 발표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시티 시장규모는 2023년 5491억 달러에서 2028년에는 1조1144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며, 연평균 성장률은 약 15.2%로 예상된다. 이는 스마트시티 기술이 미래 도시문제 해결의 핵심 동력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미국은 스마트시티를 교통 혼잡 해소와 경제성장 촉진을 위해 도입했다. LA는 지능형 교통정보시스템(ITS) 구축·운영을 통해 2020년에는 통행시간 15% 감소, 대중교통 이용률 12% 증가라는 성과를 거두어, 연간 약 1억 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다. 2028년 하계 올림픽을 대비해 대중교통망 개선과 전기 자전거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 확충을 추진 중이다. 뉴욕의 ‘OneNYC 2050’은 2050년까지 디지털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디지털 인프라 확장과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효율성 극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기후위기와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헬싱키 등 46개 ‘등대도시(Lighthouse City)’에서 스마트시티 솔루션을 실증하고, 성공 사례를 로마 등 70개 ‘후발도시(Follower City)’로 확산시키고 있다. 또한, ‘Horizon Europe 프로젝트’를 통해 2030년까지 유럽 내 100개의 탄소중립 스마트시티를 조성할 계획이다. 핀란드는 ‘헬싱키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시민참여 플랫폼 등 다양한 서비스 도입하고,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여 교통 및 에너지 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통 앱을 도입하여 2019년에는 대중교통 접근성을 20% 향상시켰고, 고령자를 위한 화상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한국은 스마트시티 개념으로 U-City(Ubiquitous City)를 도입하고, 2008년에는 세계 최초로 ICT 기술의 적극 활용을 담은 스마트시티 관련 법률을 제정했다. 현재 ‘국가시범도시 사업’과 147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거점·강소형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가시범도시로 선정된 부산과 세종은 스마트시티 기술의 실증을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 에코델타 시티’는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에너지 수요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로봇 테스트베드를 통해 다양한 생활 혁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세종 스마트시티’는 자율주행과 스마트 교통시스템으로 혁신적인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민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2018년 영국표준협회(BSI)로부터 스마트시티 구현 능력을 인정받아 스마트시티 국제인증(ISO 37106) 레벨 3(성숙)을 획득한데 이어, 2020년에는 세계적 수준인 레벨 4(선도)로 도약하는 성과를 이뤘다.
또한, 거점·강소형 사업을 통해 자율주행 배달 로봇 서비스 등 400여 개의 솔루션을 축적 및 보급하고 있다. 부천의 공유 주차 서비스는 그 중 하나로 불법 주차를 41% 감소시키고 주차장 수급률을 72% 증가시키는 등 도심 내 주차난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스마트시티는 저출생, 고령화 문제 해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유아 보육 서비스와 원격 학습 플랫폼 등 스마트 교육시스템은 가정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고 출산 장려를 지원하며, 고령층을 위한 헬스케어와 로봇 돌봄 서비스는 노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등 다양한 포용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 스마트 그리드 등과 같은 기술을 활용한 제로에너지 건축(ZEB)과 에너지 효율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를 통해 도시 전반의 에너지 소비 최적화와 함께 탄소중립 실현에도 기여한다.
스마트시티 기술은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6G 및 양자 컴퓨팅 기술과 결합해 더욱 발전할 것이다. IoT와 AI는 기후변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 및 분석하여 재난 예측과 대응을 지원한다. 2030년 이후 상용화가 예상되는 6G 및 양자 컴퓨팅은 더 빠른 데이터 전송을 통해 도시 전반의 실시간 연결성을 높이고 교통 흐름 및 에너지 분배 최적화에 기여하여,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스마트시티는 기술 혁신을 통해 다양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기술 의존에 따른 사회적 격차와 개인정보 보호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스마트시티 기술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고령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교육 프로그램 확대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보안 기술의 지속적인 강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스마트시티가 모든 시민에게 공평하게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스마트시티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시민 참여와 협력이 필수이다. 교통, 환경 등 도시문제 해결에 있어 시민 의견 수렴 및 정책 반영을 위해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리빙랩(Living Lab), 디지털 트윈 등을 포함한 참여형 디지털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는 도시 운영을 더욱 투명하고 효율적이게 할 것이다.
19세기 영국 총리를 역임한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우리는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는다”고 했다. 스마트시티는 인류 문명을 위한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법적 기반과 국가시범도시 구축 등을 통해 글로벌 리더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앞으로는 스마트시티 기술의 글로벌 표준화를 선도하고 새로운 도전 과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포괄적 솔루션을 제시함으로써, 한국의 스마트시티가 인류문명의 상징적인 산물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