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지속하락·저금리 시대…불안한 집주인 너도나도 월세전환 장기적으론 ‘전세 소멸’ 전망…300兆 규모 임대보증금 해결해야
“전세시장의 축소 및 소멸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김경환 국토연구원장)
“중장기적으로 주택 매매가가 하향 안정화되므로 결국 전세제도가 절멸할 가능성이 크다.”(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
요즘 ‘전세시대의 소멸’이 화두다. 너도나도 ‘중장기적’으로 전세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한 마디씩 거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주인이 더 이상 전세 물건을 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세는 집값 상승을 전제로 생명을 부지하는 제도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존재하는 이상한 임대 형태다.
3억원짜리 주택을 사 2억원에 전세를 놓은 집주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기본적으로 전셋값으로 받은 2억원을 뺀 1억원을 집에 묻어둬야 한다. 그러면서 재산세 등 주택을 보유하는 데 따른 각종 세금을 내야 한다. 주택을 잘 쓸 수 있도록 유지, 보수하는 비용도 고스란히 집주인 몫이다. 주택은 시간이 지나면 낡게 된다. 감가상각에 주택 가치의 하락도 집주인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다.
그래도 집주인이 전세를 놓는 건 시세 상승 기대감 때문이다. 전세를 놓은 기간 동안 집주인이 부담한 각종 비용과 주택의 감가상각비용만큼 집값이 올라야 본전이다. 그 이상은 올라야 집주인이 전세를 놓는 이유가 생긴다.
집값이 오를 때 전세제도는 집주인에게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었다. 잔뜩 빚을 내고 다주택자가 돼 이자에 세금까지 잔뜩 물어도 집값만 올라주면 만사 오케이였다. 세입자도 매달 월세를 내는 것보다 전세를 더 선호했다.
그런 상황이 해방 후부터 2008년까지 계속됐다. 1997년 외환위기 등 몇 번의 외풍으로 주춤할때가 있었지만‘ 부동산불패론’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통했다. 전세는 누가 뭐래도 임대시장의 안주인이었다.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빠르게 변했다. 매매시장에서 거래량이 줄고 2009년 말부터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했다. 전국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고, 부동산 담보대출 증가로 인해 가계대출은 1000조원 가까이 늘어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매여력이 많이 위축된 게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부동산 불패론이 어느덧 종적을 감췄고, 전세제도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집주인이 더 이상 전세를 놓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값은 올 7월까지 2년3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1년 2개월째 하락세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기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공급은 크게 줄었다. 그런데 전세 수요는 계속 늘었다. 기존 세입자는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집을 사지 않고 전세에 계속 머물렀고, 신혼부부 등 새로운 임대수요도 전세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 2~3년간 봄, 가을 이사철만 되면 전셋값이 크게 뛰는 현상이 일상화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제‘ 전세시대 종언’에 대한 경고는 누구나 한 마디씩 거드는 레퍼토리가 됐다. 정말로 전세시대는 이렇게 사그라지는 운명을 맞을까. 중장기적으로 보면 대부분 인정한다. 어찌됐든 집값이 과거처럼 뛸 일은 없다는 인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구도 줄고 1~2인가구 중심으로 바뀌면서 주택수요가 감소할 전망이다.
다만 전세시대가 끝이 나려면 해결해야 할 난제가 있다. 전세를 놓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집주인 입장에서 전셋값은 돌려줘야 할 빚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임대보증금 부채 비율은 300조원을 넘는다. 현재 경기 여건에서 전세보증금을 내놓고 마음먹은 대로 월세로 돌릴 여력이 있는 집주인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전세를 월세를 돌릴 때 산정하는 수익률인 ‘월세 전환율’이 너무 낮아 고가주택 시장에서 월세가 대세가 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세 거주자는 대부분 영세 서민들이고, 월세는 쉽게 올릴 수 없어서 강남 등지의 고가주택을 월세로 돌리면 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강남에선 흔한 10억원짜리 주택을 월세로 돌릴 때 단 6% 월세 전환율만 따져도 매월 500만원 이상 내야 한다. 그래서 임대시장이 가격대별로 차별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전세금 상환이 쉬운 저가 주택은 대부분월세로 바뀌고, 중간 가격 주택은 반전세가 대세를 이루며, 고가 주택은 전세가 주도하는 구도로 임대시장이 재편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지금 주택시장은 커다란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