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도 안내고 몰래 입주…수개월째 월세 안내고 배째라

전월세난 속 임대시장 혼돈 의도적 체납 세입자 급증 집주인 방법은 소송 뿐인데 1년이상 걸리고 비용도 부담

#.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72.6㎡ 빌라 한 채 월세가 유일한 수입원인 차정석(가명ㆍ62)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보증금 2000만원, 월세 75만원에 계약한 세입자 A(50ㆍ여)씨가 이삿날 닷새 전 잔금을 지불하지 않고 주인 몰래 입주했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의 급한 사정 때문에 우선 짐부터 옮긴 다음 10일쯤 뒤 보증금 잔금 800만원을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애초 딱한 사정이 있는 줄 알았던 차씨는 A씨가 다른 곳에서 같은 방법으로 아파트 임대 보증금과 월세를 2년 이상 체납해 집주인에게 명도소송을 당한 경험이 두 차례나 있단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입주 45일이 지난 현재 보증금 잔금은 미입금. 첫 월세도 밀렸다. 차씨는 “유일한 방법은 소송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씨의 경우에서 보듯 최근 주택임대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임대거주가 늘면서 차씨가 겪는 상황처럼 ‘악의적인’ 세입자도 등장했다. 사정을 봐달라며 먼저 이사한 뒤 보증금 잔금과 월세를 차일피일 미루고 1년이상 버티다 다른 데로 옮기는 독특한 유형이다. 이들과 집주인이 벌이는 법적 분쟁도 해마다 늘고 있다.

‘배째는’세입자 vs 내쫓는 집주인…혼돈의 전월세시장

이처럼 임대거래 현장에서 ‘체납을 의도한’ 세입자 비중은 서울ㆍ수도권 전월세 시장의 5∼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부천시 B공인 최 모 대표는 “잔금 완납을 미루고 짐부터 옮기려는 세입자 비중이 20%까지 늘었다”며 “이중 절반은 체납을 밥먹듯하며 집을 옮기는 뜨내기들”이라고 말했다.

200만원 이상 고가 월세가 많은 서울 강남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도곡동 C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초 타워팰리스에 1년이상 월세를 의도적으로 체납하다 소송을 거쳐 강제로 쫓겨난 세입자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임대료를 내지 않고 입주한 ‘배째라형’ 세입자 때문에 속앓이하다 명도소송을 제기하는 집주인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3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이 접수한 건물명도ㆍ철거소송은 3만3396건으로 최근 2년간 연평균 3.25%씩 늘었다.

처리된 소송중 집주인의 승소비율(일부승소 제외)도 2011년 48.4%로 전년대비 0.2%포인트 감소했으나 지난해 다시 49.1%로 증가했다.

집주인들 ‘악성 세입자’ 골머리

하지만 명도소송을 꺼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소송기간이 최소 6개월인데다, 명도소송에서 승소해도 밀린 집세와 각종 비용을 받으려면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도소송을 진행중이라는 한 집주인은 “9월에 소를 제기했는데 결정기일은 내년 2월”이라며 “밀린 월세를 받으려면 1년 이상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대비한 ‘제소전 화해’ 접수도 지난 5년간 평균 3.5%씩 계속 늘어 작년 말 현재 1만2483건에 달했다. 하지만 세입자가 반드시 동의해야 하는 데다 집이 넓을 경우 조서작성 비용도 커지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정회성 뉴타워부동산 경제연구소장은 “중형 주택을 임대계약 했다면 제소 전 화해 비용이 40만원정도, 대형은 70만원 이상 든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세입자의 보증인까지 요구하는 프랑스 등 해외에 비해 국내 임대인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전월세 분쟁상담 관계자들도 그동안 세입자들이 피해보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이젠 집주인도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유광열 서울시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주무관은 “임대거주 증가하는 등 주거형태가 서구화되면서 임대-임차인간 분쟁은 앞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윤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