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입시풍경
미국 SAT 에세이 등 대학교육 필수영역으로 구성 年 7~8회 실시 가장 유리한 점수 제출
프랑스 바칼로레아 일주일간 시험…철학문제는 국민 관심사 80%이상 합격 폭넓은 교육기회 제공 목표
독일 이비투어 선택 과목 문제 4장 분량으로 직접 서술 획일적 지식 탈피 ‘생각하는 시민’ 양성
중국 가오카오 해마다 수험생 1000만명 육박 ‘입시지옥’ 배정 학생 많은 베이징 등으로 주소 옮기기도
일본 국공립대 지원땐 센터시험 · 본고사 봐야 입시학원 격인 숙(塾) · 예비교 갈수록 확산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과목 전체가 ‘보기’(객관식) 없이 ‘쓰기’(주관식)로만 이뤄진다면? 시험기간이 하루가 아닌 1주일이라면? 한국 수험생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지구촌에서는 익숙한 입시 풍경이다. 한 국가의 입시에는 그 나라의 현재와 미래 시민상이 담겨 있다. 각국의 대학입학방식을 통해 한국 수능의 좌표를 짚어봤다.
▶미국 ‘대학공부 가늠 척도’=한국에서 문제 유출, 불법 학원 기승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ㆍ학구적 평가시험)’는 대학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한국의 수능이 중ㆍ고교의 교과과정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목표가 다르니 시험 내용에도 차이가 있다. SAT는 기본적으로 대학 공부에 필수적인 비평적 독해와 수학, 에세이 3개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5지선다형의 객관식 문제와 주관식 문제가 포함돼 있고, 시간은 총 3시간 45분 소요된다. ‘칼리지보드’라는 미국 비영리 출제기관이 문제은행식으로 운영하고, 연 7~8회 실시해 수험생들은 유리한 점수를 내면 된다.
▶유럽 ‘지식보다 생각’=프랑스와 독일의 입시제도는 족집게 과외도, 찍기도 통하지 않는 철저한 논술 형태다.
1808년 처음 도입된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시험 기간만 1주일로, 15개 과목에서 각각 출제된 4개 질문 중 하나를 골라 4시간 동안 써내는 방식이다. 특히 철학 문제는 온 국민의 관심사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2013년-정치인 비리 속출), ‘특정한 문화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2006년-이민자 폭동) 등의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가 출제됐다. 바칼로레아 커트라인은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으로, 전체 수험생의 80% 이상이 합격한다. 시험에 통과하면 점수에 상관없이 원하는 국공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시험에 떨어진다 해도 재시험을 치를 수 있다. 바칼로레아는 학생들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학생을 합격시켜 폭넓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목표가 있다.
독일의 입시제도인 ‘이비투어’ 역시 학생이 선택한 한 과목의 문제를 4장 분량에 직접 서술하는 방식이다. 획일적인 지식보다 자신의 생각을 정랍하는 ‘생각하는 시민’을 양성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中ㆍ日 ‘일류대학’우선=‘입시지옥’이란 말은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통한다. 13억 인구대국답게 매년 서울 인구(1000만명)에 육박하는 수험생들이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高考ㆍ고등교육입학시험의 줄임말)를 치른다. 출신대학이 권력과 직결되는 중국에서 1자녀, 이른바 ‘소황제’를 둔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가오카오 이민’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오카오 이민이란 대학정원 모집학생 수가 비교적 많은 베이징과 상하이 등으로 주소지를 옮기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대학들은 교육부가 정해준 인원수 내에서 다른 성(省)과 시(市) 출신의 학생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육부가 배당한 학생 수가 많은 지역으로 부모들은 아예 이사를 간다.
일본의 경우, 대입보다 고등학교 입시 경쟁이 더 뜨겁다. 명문대 부속 사립고교에 들어가면 같은 재단의 대학에 내신성적만으로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국공립대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은 독립행정법인인 ‘대학입시센터’가 주관하는 센터시험을 치러야 한다. 센터시험은 1월 13일 직후 주말 이틀간 진행된다. 이후에는 각 대학이 요구하는 본고사 전형이 남아 있다. 일본에서도 일류대를 목표로 한 경쟁이 격화하면서 한국의 입시학원 격인 ‘숙(塾)’과 ‘예비교’가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