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최근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 폭락은 ‘증세 없이 복지지출을 크게 늘린다’는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다. 1월 발생한 정부가 현실적인 제도 기반을 다듬지 않은 채 무작정 복지를 외친 탓이다. ‘이상론’에 불가한 복지공약은 기대에 부푼 국민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지지율은 경제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서독 보수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동독의 ‘경제성장’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은 BBK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 대통령’이라는 브랜딩으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강조한 공약은 유권자들의 환호를 얻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 복지공약 중 실현된 것은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의 복지공약은 후퇴했다. 대표적인 핵심공약인 기초연금은 축소된 채 예산에 반영됐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직급한다는 초안은 수정돼 소득 70% 이하 대상에 최대 2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심지어 국민연금과 연계해 국민연금에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 혜택은 줄어드는 차등 지급체계가 형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 복지 사업이라는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올 예산은 10조원이다. 2012년 4조원에서 2.5배로 껑충 뛰었다.

문제는 이를 진행할 지자체는 재원 부족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돈을 대는 ‘매칭(matching) 사업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일정 비율로 비용을 분담하는 사업. 기초연금의 경우 중앙이 국세로 74.3%를 부담하고 나머지 25.7%는 지방이 지방세로 충당)’에 들어가는 복지예산 비중이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 관련 예산의 90%를 넘어섰다.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심하게 위축되었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지방재정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중앙의 복지사업은 지자체 예산을 잠식하고 있다.

무상보육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애초 소득 하위 70%까지만 무상보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공약에 따라 무상보육으로 방향을 틀었다. 보육료와 양육수당은 2011년 4조 1033억 원에서 올해 10조 2256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 결과 누리과정을 둘러싸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갈등했다. 예산이 문제였다. 지자체는 무상보육과 기초연금은 정부사업이므로 예산편성을 못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지난해 2월 26일,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 사회에 알려졌다. 가난 때문에 목숨을 끊는 상황에서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떠난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를 계기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일면 ‘세 모녀 법’,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이 2013년 대표 발의)이 지난 12월 통과했다.

그러나 빈곤사회연대는 세 모녀 법을 개악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개정안은 빈곤의 기준인 부양의무자기준을 크게 완화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연대는 지급 탈락을 가르는 기준선이 기존 346만원(수급자 가구가 근로능력 없을 시 492만 원)에서 507만 원으로 상향된 것 외에 부양의무자의 가구 특성은 반영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초생활보장법의 주요 쟁점은 빈곤의 기준선, 즉 누구를 지원할 것인가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은 가장 넓은 빈곤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현 개정안은 부양의무제의 부분적인 완화를 제외하면 급여체계 개편에만 치중하고 있어 몸이 아파 근로능력이 없었던 송파 세 모녀는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는 끊임없는 예산문제 등의 한계로 반쪽짜리 정책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세를 일관했다.

정부는 애초 무상복지 비용을 비과세 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무상 복지비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지만 정부 곳간은 비어가고있다. 작년 세수 결손액은 11조 1000억 원에 달했다. 작년 정부의 재정수지 적자는 30조 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현재의 지출이 일시적인 것인 것이 아니라 복지와 관련된 것이라 고정적이라는 데에 있다.

재원확보에 어려움을 느낀 정부는 지난 연말 담뱃값을 2000원이나 올렸다. 주민세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해 9월 12일 기자들과 만나 “담뱃값, 주민세 인상이 증세가 아니라고 하긴 어렵다”고 발언하면서 증세를 잠정적으로 인정했다.

이른바 ‘13월의 세금폭탄’이라 불린 연말정산 파동은 국가의 모순적인 행동에 폭발한 ‘조세저항’이었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식으로 연말정산이 이뤄지면서 증세를 하게 된 이들은 연봉 5000만 원 이상의 소득층이다. 대한민국 근로소득자 중 8%에 해당한다. 실제 증세가 된 소득자들은 많지 않지만 ‘13월의 세금폭탄’이라는 반발이 일어난 것은 ‘증세는 없다’는 정부의 단언 때문이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5년 필요한 복지예산은 37조 원을 육박한다. 지난 30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가 예상한 국세 수입은 218조 2000억 원으로 국세 세입 예산 (221조 5000억 원)보다 3조 원 가량 적다. 올해 복지 예산에서 복지 관련 사업에 드는 지출은 116조 원으로 지난해 보다 9조 원(8.7%) 정도 늘었다. 총 예산 375조의 30%다. 복지 예산 가운데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돈은 77조원(66.4%)에 이른다. 올해 570조 원 정도인 국가 채무는 내년에 6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늘어나는 국가 부채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된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증세논란이 이를 증명한다. 국민은 ‘증세 없는 복지’의 환상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회사인 한국 갤럽이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09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65%가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다. 27%만이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결국 복지지출을 늘리려면 그만큼 예산이 필요하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복지정책을 수행하는 데 ‘큰 파이’는 낙수효과를 통해서든 공유경제를 통해서든 필요 조건이다.

복지정책 개편과 국가재정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경제 활성화와 재정정책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양육과 주택, 일자리 문제 해결을 통해 경제 활력의 불씨를 살려 세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지난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박원석 정의당 의원 주최로 열린 ‘연말정산 파동, 문제와 해법은’ 토론회에서 “어떻게 증세를 할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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