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아동 학대 사건이 일어난 인천 킨젤스 어린이집은 아파트 단지 내 위치한 이른바 관리동 어린이집이었다. 관리동 어린이집 건물은 엄연히 아파트 입주민 소유이기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에 매월 일정한 임대료를 내게 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 이기심이 관리동 어린이집의 저질 보육서비스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월 임대료 수입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입주자대표회가 관리동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을 가로막거나, 어린이집에 무리한 임대료를 요구해 저비용 보육 서비스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세 받으려 국공립 전환 막는 입주자대표회=27일 강원 춘천시에 따르면 시는 작년 5월 춘천 지역의 모 아파트에 단지 관리동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을 제안했다. 원장과 학부모들은 더 안정적인 재원을 갖추고 질 좋다는 국공립으로의 전환을 반겼으나, 이 어린이집 건물의 사실상 주인인 입주자대표회는 국공립 전환을 거부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시 관계자는 “국공립으로 전환될 경우 관리동 어린이집에 대한 재산권을 사실상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집 이용 아동 학부모 이외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표가 많았다”고 전했다.
정원이 53명인 이 관리동 어린이집의 원생 수는 42명.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가 어린이집에서 매월 받는 임대료는 약 50만원이다. 일부 입주민들은 “1년이면 600만원, 5년이면 3000만원인데 국공립 전환하면 이 돈이 깡그리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의 어느 아파트를 막론하고, 아파트 전체 주민에 비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동의 학부모들은 ‘소수파’이기 마련이다. 보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관리동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임대료 등 재산권을 걱정하는 ‘다수파’의 여론의 벽에 막혀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경남 양산시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관리동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이 가로막혔다. 작년 초부터 시가 먼저 모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을 국공립을 전환해주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입주자대표회는 이를 끝내 거부했다. 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관리동 어린이집이 내는 월세가 입주자대표회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결국 그 수입이 사라져버리니까 반대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자체도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율을 높여야 하고 어린이집 이용 학부모들은 더 적극적으로 국공립 전환을 원한다”면서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한 와중에도 같은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국공립 어린이집 설치가 어려운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했다.
▶열악학 재정여건…제2의 킨젤스 몰아붙여=문제는 관리동 어린이집이 다른 유형의 어린이집에 비해 재정 여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제2의 킨젤스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통상 관리동 어린이집은 입찰을 붙여 입주자대표회가 운영자, 즉 원장을 뽑게 된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서울대 어린이 보육지원센터장)는 “이 과정에서 입주자대표회는 보육의 전문성이나 보육 서비스의 질보다는 ‘누가 월 임대료를 많이 적어 내는가’를 기준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물가인상을 억제한다며 정부가 지급하는 보육료의 인상을 억제한다. 입주자대표회는 또 그들대로 높은 임대료를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동 어린이집은 식비를 아끼거나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더 적게 드는 ‘값싼’ 보육교사를 채용하는 등 비용 절감 시스템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물론 비용 압박은 비단 관리동 어린이집에 국한되는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차이는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로 규모의 문제 때문이다. 모 건설사의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을 총괄하는 한 관계자는 “어린이집 규모가 크든 작든 그 운영에는 기본적인 운영비가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도 원생이 많아야 비용 부담도 그만큼 적어지는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 연구는 원생 규모가 80명은 되어야 어린이집 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진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보통의 관리동 어린이집의 원생은 30∼40명으로 다른 어린이집에 비해 규모가 작다. 그만큼 비용 압박이 심한 구조다.
이 관계자는 “더구나 입주자대표회 입찰을 받기 위해 높은 임대료를 적어낸 탓에, 관리동 어린이집 중에는 작게는 120만원 많게는 250만원의 월 임대료를 내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많은 관리동 어린이집의 경우 월 임대료와 인건비를 내면 운영이 잘 안 되는 구조”라며 “그래서 자격을 갖춘 소위 괜찮은 교사를 쓰기도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는 “보육교사들의 월 급여가 200만원도 안 된다지만 호봉이 계속 올라가니 이것 역시 부담이 안 될 수가 없고, 어떤 편법을 쓰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되는 구조가 성립된다. 그 피해는 우리 아동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고 말했다.
이는 아동 학대를 가한 일부 교사들의 인성과 자질 문제와는 또 다른, 매우 구조적인 문제다.
정직하게 운영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원장이 자기 월급을 못 가져가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 이유 있는 변명?=전문가들은 결국 관리동 어린이집의 해법은 국공립 전환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자체나 학부모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결정권을 쥔 입주자대표회가 이를 막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입주자대표회도 관리동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 반대에 나름의 명분이 있다. 관리동 어린이집이 국공립으로 전환되면 아파트 단지 이외 거주 아동이 몰려들어, 정작 아파트 단지 내 자녀들이 입소를 못하는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이른바 ‘역차별’이다.
아파트 단지 이외 거주 아동이란 다른 일반 아동이 아니고, 기초수급 가정의 아동이나 장애 아동 등을 가리킨다. 입주자대표회의 염려처럼, 이 아동들은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 과정에서 단지 내 아동보다 우선해서 입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어린이집이 어떤 형태로 지자체에 넘겨지느냐에 따라 사정이 각기 다르다.
관리동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게 되면 입주자대표회는 지자체에 어린이집 건물을 무상임대 혹은 기부채납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로 내놔야 한다. 기부채납은 지자체에 그 소유권을 전부 넘기는 것이고, 무상임대는 말그대로 임대하는 것이다. 10년 이상 장기 임대의 형태가 많다.
재산권을 중시하는 입주자대표회로서는 당연히 무상임대보다 기부채납을 더 꺼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영유아보육법이 기부채납의 경우에만 아파트 단지 내 아동에게 어린이집 우선 입소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상임대에는 아파트 단지 내 아동 우선 입소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즉, 상당수 입주자대표회는 “기부채납은 재산권을 다 포기하는 방식이라 도저히 못하겠으니, 국공립 전환을 하고 싶으면 무상임대의 방식도 아파트 단지 내 아동에게 우선 입소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재산권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논리는 얼핏 일리 있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실상은 또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다”라고 했다.
무슨 말일까. 이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 이외 아동이라고 해봐야 기초수급 아동이나 장애 아동들이다. 그런데 데이터를 보면 이들이 우선권을 받고 국공립 어린이집에 입소하는 비율은 겨우 5∼6%밖에 안 된다”고 했다.
즉, 이처럼 소수인 외부 아동들의 우선 입소권 때문에 단지 내 어린이들이 어린이집을 이용 못하는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혹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관리동 어린이집 중에는 앞선 춘천시 모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처럼 정원을 못 채우는 경우도 많다.
이 관계자는 “이런 자료를 보여주며 수십 번씩 설득했지만 입주자대표회는 같은 논리만 들이대며 요지부동”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차라리 무상임대로 어린이집을 내놓을 경우에도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에게 우선 입소권을 배정하는 법이 개정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입주자대표회가 제시하는 그럴듯한 반대 명분이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읍소했다.
마침 작년 9월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공동주택의 관리동 어린이집을 무상임대 형태로 내놓을 경우에도 기부채납 형태와 마찬가지로 아파트 단지 내 아동들이 우선 입소권을 배정받게 하는 영유아보육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 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순형 교수는 “일부 입주자대표회의 행태는 저질 그 자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보육 담당 지자체 공무원은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입주자대표회의 갑질을 보면 옛말이 된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한편, 인천 연수구청에 따르면 킨젤스 어린이집이 위치한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는 구청과 함께 이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을 뒤늦게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청 관계자는 "아동 학대까지 발생한 마당에 입주자대표회가 국공립 전환을 반대할 명분이 적어진 것 같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