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생활 노출에 대해 얼마나 둔감해져 있을까. 새해 벽두부터 터져 나온 두 개의 연예가 사건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 새삼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병헌과 클라라 사건이 그것이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것처럼 이병헌에게 음담패설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50억 협박을 한 모델 이지연과 걸 그룹 글램의 김다희는 결국 각각 징역 1년 2개월,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매체가 공개한 모바일 메신저의 내용은 오히려 이병헌에 대한 비난 여론을 불러왔다. ‘로맨틱, 성공적’이라는 이병헌이 보낸 야릇한 단어는 이 사건에서 더 적극적이었던 것이 그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지금 이 단어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 여러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고 있을 정도다.

한편 연이어 터진 클라라 사건 역시 그저 소속사와 소속 연예인의 분쟁 정도로 끝났을 일이 ‘성적 수치심’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표현의 기사와 맞물리면서 결국은 모바일 메신저 내용 공개로 이어졌다. 소속사 회장의 성적 수치심을 이유로 소속사와의 계약 무효를 주장했던 클라라지만, 메신저 내용은 보다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클라라의 모습을 드러냈다. 화보사진을 굳이 보내고 “어때요?”라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더 자극적인 기사들을 양산했다. 마치 클라라가 회장을 유혹한 듯한 뉘앙스를 담아낸 것이다.

이병헌과 클라라 사건은 너무나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 이면에 남겨진 사생활 노출에 대한 민감한 부분들을 덮어버린다. 사안 자체에 집중하다보면 그 사안이 공개되는 과정에 대한 문젯거리는 아무 것도 아닌 듯 묻혀버리는 것이다.

한때 잠복을 통해 찍혀진 사진들은 파파라치성 보도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자리를 ‘모바일 메신저’가 대신하는 듯한 양상이다. 스크롤을 한참 해야 끝까지 다 볼 정도로 꽤 긴 내용의 ‘모바일 메신저’지만 그 내용들은 가감 없이 그대로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된다. ...철학자 한병철은 <투명사회>라는 책을 통해 과거의 통제수단이 파놉티콘 형태의 자발적인 ‘감시와 처벌’로 이뤄졌다면, 지금의 통제수단은 ‘투명을 요구하는 사회’를 통해 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적인 것들을 공개하게 요구하는 사회는 바로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모바일 메신저’가 마치 ‘알 권리’인 양 포장되어 공개되고, 그것을 보는 이들 역시 거기에 대해 아무런 반발심을 갖지 않는다는 건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닌가.

누군가는 이제 무서워서 모바일 메신저를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공개된 누군가의 사적인 메신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여다볼 때, 그 일은 언젠가는 고스란히 우리를 대상으로 한다는 걸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행위가 된다. 우리가 식당에서 자신이 먹을 음식을 찍어 SNS에 올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은 점점 그 경계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투명사회가 부여하는 공포다. 이 유리벽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이병헌이나 클라라처럼 자신의 속살을 공개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