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자.”

버락 오바마<사진> 미국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맞아 ‘새 시대’를 천명했다. 마침내 베일을 벗은 연두교서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부자 증세’를 통해 경제 회복의 과실을 중산층과 서민에게 돌려주고 국제 테러리즘과 사이버 공격의 위협에도 단호하게 대처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백악관이 20일(현지시간) 오후 9시 의회 상ㆍ하원 합동회의장에서 열리는 새해 국정연설에 앞서 공개한 연설문 발췌록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세기(21세기)에 진입한지 15년이 지났다”면서 “그동안 테러와 전쟁, 경기침체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오늘밤 우리는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고 밝혔다.

집권 1기는 물론 전임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확실히 선을 그으며 집권 후반기를 새롭게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부자 증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미국 경제가 나아지고 재정 적자가 줄어들며 산업이 부흥하고 에너지 생산이 붐을 이루면서 혹독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이 시점에 향후 15년 또는 수십년간 누구를 살려야 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정은 명백하다. 정치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중산층을 위한 경제나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은 제대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방안으로 실제 연설에서 부부 합산 연소득 50만달러 이상 고소득층을 상대로 한 자본소득 및 배당이익 최고세율을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수준인 28%로 올리자고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 전반기 15%에서 23.8%로 올린 부자 증세를 또다시 제안하면서 공화당이 상ㆍ하원을 모두 장악한 의회에 관련 입법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식과 같은 유산 상속분에 자본소득세를 부과하는 구상도 내놓는다.

오바마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320억달러의 세수를 늘림으로써 저소득층 감세와 가족 부양을 위한 유급 휴가 제도 도입,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등록금 전액 지원 등에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적 기대가 높은 소득 불평등 해소 이슈를 핵심 국정 과제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잔여 임기 2년간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지지 않고 국정 주도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울러 월스트리트 대형 은행 등 자산이 500억달러를 초과하는 100대 금융기관으로부터 은행세를 거둬들이는 방안도 제시할 예정이다.

외교 현안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력과 강한 외교력을 결합한 ‘더 현명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발췌록에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보여준 군사력을 포함한 미국의 지도력은 이슬람국가(IS)의 약진을 멈추게 했다”며 “중동에서의 다른 전쟁에 발을 담그는 대신 테러 집단을 분쇄하는 데 아랍국을 포함한 광범위한 연합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노력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북한 소행으로 지목한 ‘소니 해킹’에 따른 사이버안보도 강조했다.

그는 “어떤 외국이나 해커도 미국의 인터넷망을 봉쇄하거나 기업의 영업 비밀을 훔쳐가거나 미국 가정, 특히 아동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정부는 테러리즘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위협과 싸우기 위해 정보를 통합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의회에 사이버 공격 위협을 피하고 신분(ID) 도용 등에 맞설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청했다.

발췌록에는 그러나 ‘북한’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응징책 등을 거론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미국산 공산품 및 서비스의 수출 증대를 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및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체결 중요성도 강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행정부가 무역 협상 전권을 위임받아 의회 승인 없이도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신속협상권(TPA)을 부여해달라고 의회에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국정연설이 끝나고 나서 국민을 상대로 이들 구상을 직접 설명하기 위한 ‘로드쇼’에 나선다.

그는 이번주 아이다호와 캔자스 주를 방문하고 유튜브 블로거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민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한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 국정 구상에 즉각 거부감을 나타내 입법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세제 관련 법안을 다루는 오린 해치(유타) 상원 재무위원장은 부자 증세 방침을“계급투쟁 조장”이라고 비난했고, 리처드 셸비(앨라배마) 상원 은행위원장은 은행세부과 법안은 ‘도착 즉시 사망’(DOA)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은 이미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 키스톤XL 송유관건설, 이민개혁, 금융규제 등의 현안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