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경배하는 듯한 김병종미술관
작가 기증품까지 ‘인간의 예술’ 모여
뱀사골·구룡폭포, 자연이 빚은 예술
이몽룡 실제 인물 추억담긴 광한루원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가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지리산을 경배하는 모습으로 서 있다.
미술관은 가까이는 함파우골, 멀리는 뱀사골 등이 자연을 섬기는 모양새다. 자연에 잘 녹아들면서, 납작 엎드린 듯 ‘겸손한 미술관’이 됐으면 하는 김병종 작가(서울대 동양화과 명예교수)의 바람대로다.
본관 앞 어린이 아뜰리에 ‘콩’이 있는 별관에는 좁은 통로 사이, 거울 속 미디어 아트가 반긴다. 거울이 서로 반사하니 좁은 통로도 넓어 보이고, 지나는 관람객은 미디어 아트와 어울려 작품 주인공이 된다. 본관과 별관 사이의 못에 반영된 미술관은 녹색 구릉과 어우러진 데칼코마니를 빚어낸다.
자연과 국민에 경배하는 미술관
미술관 앞 계단식 못엔 함파우골의 자연과 초목이 담겨, 그 자체로도 작품이다. 미술관은 ‘바보 예수’, ‘풍죽’, ‘송화분분’등 김 작가의 남다른 상상력이 빚은 작품 450여 점과 기증된 다른 작가의 명작 수십점을 보여준다. ‘송화분분’의 아이콘인 붉은 꽃은 ‘생명의 상징’이다. ‘풍죽’은 바람을 그리려, 바람결에 댓잎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듯한 느낌으로 표현했다.
갤러리 곳곳에 ‘숲멍’할 수 있는 통창이 있다. 통창은 솔숲과 지리산을 담은 실경 회화의 액자가 된다. 2000권이 있는 북카페도 있고, 달항아리 백자의 매력을 보여주는 ‘국보순회전’도 진행되고 있어, 이곳에서 다채로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너무 맛있어서 미안’이라는 간판을 단 커피숍에 앉아 자연이 빚은 예술을 감상하고 ‘물멍’해도 좋다.
특히 미술관이 국악을 만나는 장면은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다. 미술관은 국립민속국악원, 관광공사 전북지사 등과 ‘미술관에서의 음악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이 미술관은 국민 힐링, 무명의 지역작가 전시 기회 제공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닌다. 지리산-춘향-광한루-소릿길의 ‘남원 낭만주의’를 확장시키는 ‘콘텐츠 연구개발실’이기도 한 것이다.
‘자연의 예술’지리산 뱀사골
인간의 예술이 모인 미술관은 누구를 향해 경배하는가. 우리는 ‘자연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는 뱀사골로 향한다.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에서 반선까지 산의 북사면을 흘러내리는 14㎞의 골짜기로 지리산국립공원 중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로 꼽힌다.
전구간이 기암절벽 으로 이루어진 이 계곡에는 100여 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넓은 너럭바위가 곳곳에 있고, 10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줄을 잇는다.
사진작가가 몰린다는 괴석 위에 서자, 과연 지리산의 옥수(玉水)는 흰 포말로 바뀌어 구불구불 용처럼 흘러 내려온다. 계곡은 언제 찾아도 수량이 풍부하다. 뱀사골에 가 있기만 해도 이마의 땀이 식는다. 근처에는 석실, 요룡대, 탁용소, 병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 등과 같은 명승이 있다.
관리사무소가 허락하는 어디에든 앉아 탁족하는것 만으로 어느새 더위기 잊힌다. 지리산국립공원 북부안내소를 통해 안내를 받으면 자연생태 관찰로를 통해 산책과 등산도 즐길 수 있다.
뱀사골 인근 와운마을은 해발 800m나 되는데도 제법 가옥이 많고 상가도 있다. 이곳의 명물은 마을 뒷산 천연기념물 ‘천년송’이다. 할배송에 비해 할매송이 더 크다. 수령은 500여 년을 헤아리지만 천년송이라 부르는 이 소나무는 지리산의 평화와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다. 낙락장송의 전형 같은 자태도 일품이고, 지리산 5부 능선인 이곳에서 위아래로 보는 파노라마 풍경도 멋지다.
구룡폭포 벗어나니 ‘산토리니’가...
뱀사골서 멀지 않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달궁계곡은 반야봉·노고단·만복대·고리봉·덕두봉의 호위 속에 달궁마을부터 심원마을까지 6㎞ 구간을 흐른다. 쟁반소, 와폭, 구암소, 청룡소, 안심소 등 크고 작은 폭포와 소를 지도와 대조하며 일일이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달궁은 경주의 월성과 같은 뜻이다. 삼국정립 이전인 기원전 350년, 신흥제국 백제와 이웃나라 변한에 쫓기던 마한의 효왕이 피란도성을 쌓은 곳이어서, 삼한을 연구하는 중요 역사유적이기도 하다.
지리산에서 다시 평지로 가기 위해 남원시 주천면 산도로를 내려가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물소리가 아득하게 들리고, 샛길 입구에 구룡폭포 입구 표지가 나온다.
이곳은 ‘4월 초파일이면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서 노닐다가 다시 승천한다’는 용들의 냉탕욕장이라고 한다. 두 마리 용이 첨벙거리며 교류한다는 뜻의 교룡담, 원천천 상류가 폭포 위쪽에 있어 원천폭포라고도 한다. ‘용(龍)자’들어간 폭포치고 멋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주인공을 만나려면 가파른 계단 370개를 내려가야 한다.
드디어 구름다리 앞에 높이 30m 폭포가 우렁차게 물줄기를 뿜어낸다. ‘원천’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뭔가 영험한 데가 있어서인지, 기도하러 온 무속인도 늘 보인다. 뱀사골의 물소리가 현악 4중주라면 구룡폭포의 물은 오케스트라라고 할 만 하다.
지리산 운봉 바로 아래 평지인 남원시 덕과면 용산리에는 허브와 조각품, 그리스 산토리니 루프톱 디자인이 어우러진 ‘지리산 허브밸리’가 있다. 1300여 종의 허브가 자생해 웰빙 허브산업 특구 지정을 받았다. 허브체험관광농원, 허브 의약품·제품 제조단지, 자생식물생태공원뿐만 아니라, 사진 찍기 좋은 산토리니 옥상놀이터도 매력적이다. 지리산 인근에는 음식도 약이다. 음식점 ‘정향채의 하루’의 임명복 사장(사찰요리 전문가)은 항암에 좋은 성분으로만 미식을 만든다.
남원을 사무치게 그리던 봉화 성도령
김병종 미술관-춘향테마파크-광한루원은 1㎞ 반경 내에 있다. ‘미술관 옆 춘향이’광한루원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을 상징하는 광한루와 지상의 낙원인 삼신산이 잘 어울리도록 설계됐다. 한국 제일의 누원이며, 경회루·촉석루·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이다.
광한루원 안에는 광한루, 오작교, 완월정, 영주각, 춘향관, 춘향사당, 월매집, 공예품점, 카페 등이 있다. 물이 통하는 아치 수로 위 오작교에 서면 누구든 소설의 주인공이 된다. 한복 차림이면 금상첨화다.
소설 속 이몽룡은 남원 일대 암행어사·담양군수를 지낸 문신 성이성(1595∼1664)이다. 성이성은 봉화 자기집 근처 마을에 춘향 비슷한 ‘춘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계서당고택을 지으면서 유난히 여성용 규방을 넓게 차렸지만, 소년 때 헤어진 춘향은 끝내 봉화로 오지 않았다.
‘국가유산 방문 캠페인’10개 코스 중 하나인 ‘소릿길’거점인 남원시는 올해 춘향제를 통해 ‘바가지 없는 축제’, ‘시민과 여행자가 화합하는 축제’의 신기원을 이뤘다.
그리고 ▷삼산리 춤추는 솔숲 ▷9세기 초 최초의 선종사찰 실상사 ▷서도역 영상촬영장 ▷혼불 문학관 ▷‘아름다운 숲’대상을 받은 서어나무숲 ▷지리산 정령치의 청정 생태 ▷남원추어탕과 더덕장어구이 등 건강미식을 두루 갖췄다.
춘향의 치마폭에서 나온 남원은 이런 매력에 더해, 자연(지리산)과 사람(예술가)이 빚어낸 작품들을 기반으로 ‘국민 힐링 콘텐츠’를 확장시키고 있었다.
남원=함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