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프라하)=함영훈 기자] 체코 프라하 성에서 카를교를 건너 블타바강 동쪽으로 가면 구시가지 광장에 가깝다.
어찌어찌 골목을 누비다 구시가지에 도달하기 전에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건물 옥상에 붙은 철제 스틱에 한 사내가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앗, 안돼~.” 초행길이라면 소스라치게 놀랄만 하다.
▶노는 남자 ‘행잉 OOOO’= 알고보니,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매달린 모습의 조각작품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놀란 만큼 센세이션도 커서, 미국, 영국 원정 전시를 하기도 했다.
‘프로이트식 정신분석학의 종언을 고하는 조각품인가?’ 하는 생각부터 드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 하다.
작가 다비드 체르니는 1996년 이런 류의 조각작품(‘놀고 있는 남자’)을 처음 제작했는데, 프라하 구시가지 것의 주인공을 ‘프로이트’로 못박았다.
해석은 분분하다. 작가의 고뇌와 숱한 발언 등을 종합해볼 때, 품격있게 해석해 주면 ‘지성의 한계’를 뜻하고, 까칠하게 해석하면 ‘작가 스스로 튀어서 작품활동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주목받으려 했던 관종 작품’이라는 얘기로 정리된다. 백날 고뇌만 하기 보다는 ‘확 그냥’, ‘막 그냥’ 질러, 충격요법을 쓰는게 때론 지혜로울 경우가 있다는 교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구시가지 광장이다. 광장엔 바츨라프 2세 기마동상,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이 자리잡은 가운데, 천문시계, 구시청사, 틴 성당, 성 니콜라스 성당 등이 호위한다.
▶“인생 뭐 있나, 탐욕,정욕 버려라”= 정시가 되면 프라하 구시가지 천문시계탑에서 종이 울린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마리오네트가 줄을 당겨 종을 치자, 거울을 든 허영, 돈주머니를 쥔 탐욕, 달콤한 선율로 이성을 유혹하는 정욕의 인형들은 죽음으로 가는 시간이 아쉬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창이 열리고 구원의 12사도가 인사를 건네면 천문시계 꼭대기에 있던 황금닭이 운다.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을 이겨낼 수 없으니 욕심을 버리고, 황금 닭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자는 다짐을, 체코인들은 매시간 한다.
시계탑에 오르면 프라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남들이 많이 보지 않는 북서편에는 커다란 붉은 메트로놈이 있는데, 프라하가 음악을 사랑하며, 박자에 맞춰 질서를 잘 지키는 착한 유럽인의 도시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행자들이 겪어 보면 알겠지만, 체코인들은 성실하고 겸손하며 지혜도 있어, 마치 ‘예쁜데도 겸손한 누나’, ‘교회 다니는 공대 오빠’ 같다. 보헤미안, 동양적 느낌의 모라비안, 슬라브, 게르만계가 섞여, 유럽내 선남선녀가 사는 나라이다.
이곳에선 크리스마스 마켓, 정치 회의, 결혼식, 죄수의 처형 등이 다채롭게 열렸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탈 공산화 민주화운동의 불꽃도 이곳에서 타올랐다. 프라하 1000년 역사의 산 증인 같은 곳이다.
▶스메타나의 화약탑-시민회관 인연= 구시가지 광장 동쪽 500m 지점에는 화약탑, 시민회관, 예술적으로 지은 핑크빛 팔라디움쇼핑센터, 공산당박물관이 줄지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화약탑과 시민회관이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국민음악파의 거장 스메타나는 청년시절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을 회피하려는 체코인의 저항에 가담해 화약탑을 수호하는 역할의 일부를 담당했고, 늦게 고국에 돌아와서는 시민회관에서 다양한 자신의 애국적 음악을 공연했다.
화약탑은 1475년 완공한 높이 65m, 계단 186개로 이루어진 고딕 양식 성문이다. 구시가지 13개 성문 중 하나.
시민회관에 자리잡고 있었던 왕궁을 수호하는 역할로, 대관식 등 국가행사장이자, 외국 손님을 맞는 관문이었지만, 16세기엔 총기와 종을 주조하던 곳으로, 18세기엔 프라하가 러시아 침공을 받았을 때 방어용 화약 저장소로 쓰였다.
구시가지 서편 인근에는 도서관 클레멘티움이 있다.
체코 학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200년 넘게 체코 국립도서관 자격을 유지하며 귀중한 서적과 사본, 신문 등을 소장하고 있다. 천장화가 그려져 있는 장서각(장서보관소) 내부는 품격 있고 엄숙하게 꾸며져, 학술을 숭상하는 체코의 마음가짐을 엿볼수 있다.
이 도서관에는 체코식 해시계 등 과학기술 유산도 있다. 햇빛이 일정한 선을 따라 들어오다가 정해진 지점에 이르면 연락해서 시내 전체에 종을 울린다. 이곳 옥상 역시 프라하성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클레멘티움의 명물은 ‘책동굴’ 속 환상적인 인증샷이다. 이걸 찍으려고 대기줄이 늘 장사진을 이룬다.
음악을 사랑하는 체코인들의 공연장은 루돌피눔, 시민회관, 국립극장, 에스테이트극장 등 큰 곳만 수십개나 되는데, 도서관인 클레멘티눔 내부 예배당에서도 음악회가 자주 열린다
▶모차르트가 묵고, 카사노바가 띄운 호텔= 구시가지에서 강변으로 가면 카를교 동단에서 3분만 걸으면 되는 곳에 더 모차르트 호텔 프라하가 있다. 프라하성과 블타바강이 잘 보이는 최고 전망의 호텔이다.
프라하 공연에서 용기를 얻은 모차르트가 몇 달 더 머물며 명작의 영감을 쌓던 곳이다. 모차르트 때문에 명성이 높아지자 숱한 셀럽이 묵었으며, 희대의 난봉꾼 카사노바가 이곳에 머물러 더욱 유명해졌다. 모차르트의 방은 강변쪽 코너방인데, 카사노바의 방은 중정(건물 가운데 마당)을 내려다볼수 있는 곳의 정중앙에 있다.
관광객들에게 모차르트의 방 보다는 여인과 관련된 소품과 그림이 많은 카사노바의 방이 더 인기 있다. 오는 2027년 소피텔 계열의 최고 클라스인 ‘소피텔 레전드’ 모자를 쓰게 된다.
카를교는 강동의 구시가지와 강서의 소지구쪽 두 고딕양식의 탑을 연결했다. 여행객들은 주로 프라하성이 잘 보이는 동쪽 고딕탑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서쪽 고딕탑에 올라도 사진의 작품성은 뒤지지 않는다. 도전을 권한다.
▶왕 아니면 한량 됐을 카를4세의 카를교 해학= 카를교는 신성로마제국 군사들이 카를 4세 황제의 지휘 하에 원정을 마치고, 유럽의 정중앙에 자리잡은 제국의 수도, 프라하성으로 개선하며 마지막으로 건너던 다리다.
다리는 황제의 지휘 아래 1357년 9월 7일 5시 31분 첫 삽을 떴다. 예술, 사냥, 온천, 음악을 좋아했던 낭만주의자 카를 4세는 착공 시점을 1-3-5-7-9-7-5-3-1 숫자 조합으로 끼를 부린다. 아마 왕이 되지 않았다면 한량이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게 설정한 착공일시에 대해 태양계와 우주, 윤회 철학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리 아래 1개, 다리위 30개 조각상 중에서 한국인으로부터 ‘별이 다섯 개’라는 별명을 얻은, 얀 네포무츠키 성자의 동상이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황제의 협박에도 황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지켜주었다가 근위병들에 의해 블타바강에 던져진다. 그가 죽자 강물위로 다섯 개의 별 같은 광채가 떠올랐고 이후 목숨을 지켜주는 수호성인이 되었다.
별 다섯개가 얼굴의 아우라가 된 그의 동상은 ‘만지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카를교 여행객이면 빠짐없이 동상의 발 밑에 있는 믿음과 의리의 부조를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