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프라하)=함영훈 기자]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은 체코의 심장 같은 곳이다. 전성기땐 유럽의 심장이었다.
프라하엔 기원전 4000년 경부터 사람이 살았고, 한국(신라)에 로마형 글라스(황남대총 발굴)가 수입되던 5~6세기 무렵, 슬라브 민족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정중앙에 있는 상공업 지역이었다.
역사가 신화가 뒤섞인 리부셰 공주의 프라하 건설 이야기는 8~9세기 무렵으로 비정된다. 이 무렵 한국에는 서역 카페트 수입사치품이 범람해 남북국(신라-발해)시대 신라 흥덕왕이 일시적으로 수입금지조치를 내리던 때이다. 그러나 다시 9세기 말 헌강왕때 서역상인 처용이 중급관리로 발탁되면서, 국제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고, 구시가지인 황룡사 인근은 탑돌이를 빙자한 ‘불금(Fire Friday)의 국제연애’가 한창이었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프라하성이 400여년에 걸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춰가는 동안, 프라하의 구시가지는 11세기 무렵, 게르만-보헤미안-모라비안-슬라브의 교역 중심지가 되었고, 12세기엔 중부 유럽을 선도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된다.
마침내 카를 4세 대제 때인 14세기 중엽 유럽을 호령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으로서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역사는 모두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한국의 14세기 중후반은 선악과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 복잡한 시기였다. 70만~50만년전 에슐리안 액스(연천,단양 주먹도끼)를 사용한 역사적 사실이 아시아 최초로 확인되는 등 지혜로운 DNA를 가졌던 한국은 기원전 3000~1000년 고조선 연방제국[수도는 아스(달=市):아시아 및 어스의 어원]으로서 동아시아~중앙아시아에서 위용을 떨쳤지만, 지나(china:sino) 세력에 밀리면서 기원전 1세기부터 가야 등 4국시대로, 7세기 남북국(신라-발해)시대로 분열된다. 10~14세기 고려에 이르러, 동북아시아의 강자 거란(캐세이)을 물리쳤지만 13세기 징기스칸 후예들의 침략을 막지 못해 몽골대제국의 사위 나라로 쇠락하다가, 14세기 말엔 친명 쿠테타 세력이 조선을 세웠다.
프라하 블타바강 동편 구시가지가 경제, 통상, 행정, 생활문화의 중심지로서 1000여년의 역사를 갖는 동안, 서편 프라하성은 황제국 품격의 상징으로 구시가지를 엄호했다.
그리고 1357년 착공해 1402년 완공된 카를교는 프라하성의 왕권과 국방, 구시가지의 경제와 행정, 문화를 연결했다.
한국은 이때 고려 수호세력의 개성 두문동 농성, 조선의 고려사 지우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 출신 이성계 후손들의 유혈 갈등, 왕권과 귀족권력의 대립 등으로 어수선했다.
프라하는 그러나, 15세기 말부터 유럽 경영의 주도권을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넘겨주면서, 주변국의 영향권에 놓여 자주권을 위협받게 된다.
우리와 같은 공동체이기도 했던 여진(진으로 불리던 남북국시대 발해의 잔여 민족)이 금과 청을 잇따라 건국해 중국을 지배하는 동안, 이를 배척했던 위화도 회군 쿠데타 세력은 강대국 청을 배격하고 패망 직전의 명을 섬기는 ‘무능한 사대주의’ 양태를 보이다, 17세기 분노한 청에 항복하면서 굴종의 길을 걷게 된다.
체코와 한국이 강대국의 영향을 받는 신세가 된 과정은 이렇듯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도 고조선~고려에 이르는 4000여년의 역사 복원을 꾸준히 벌여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선 이씨 왕가가 벌인 ‘고려 및 그 이전 역사 흔적 지우기’로 인해, 15세기 이후 역사에만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체코는 9세기 무렵 부터 단절없이 이어온 역사를 생생하게 간직한다.
독일,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지속적으로 받던 체코는 17세기 스웨덴의 침공, 18세기 러시아의 침공 까지 받아야 했다. 세계대전 이후엔 공산화되면서 소련 공산당의 철혈통치를 받았다가, 1968년 ‘프라하의 봄’ 저항 운동을 거쳐, 1991년 부터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됐다.
그래도 체코가 다행인 것은 한국 처럼, 중국과 중국 하수인 정권, 일본 등에 의한 역사 말살, 기록과 유물의 파괴는 적었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체코인과 한국인 모두 손재주가 뛰어나고 문화예술에 강하다는 점이다.
체코는 20세기 최고의 기계, 자동차공업국가 중 하나였고, 한국은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최고의 ICT국가로 거듭났다.
체코에서 유럽의 수많은 음악가,문학가가 날개를 폈고, 한국에선 K-컬쳐와 한류가 21세기 벽두부터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국민의 취미가 ‘국난 극복’이라는 점은 또 하나의 양국 공통점인 듯 싶다. 1인당 명목 GDP는 최근 일본을 제친 한국이 조금 높지만, 노동시간 대비 소득은 체코와 한국이 거의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