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에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낭송
김 여사 소환여부에 “법앞에 예외없다”…민주당 특검도 작심비판
[헤럴드경제=윤호 기자]최근 검찰 인사에서 법무부와 긴장을 노출했던 이원석 검찰총장이 수도권에 전입한 검사들 앞에서 ‘현재 삶의 고통을 참고 견디면 희망이 보일 것’이라는 내용의 시를 낭송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같은 날 이 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수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루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는 내용의 특검법 발의에 대해 작심 발언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이 총장은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에서 열린 전입 인사 행사 말미에 “여러분이 하루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소망한다”며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낭송했다.
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있는 것, 현재는 항상 슬픈 것.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나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권에서 검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우려를 시 낭송에 녹여 구성원들을 다독이고 최대한 감정을 자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이 총장은 “리더인 부장검사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supervising) ‘감독’하고, ‘관리’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부원들의 옆에 나란히 서서 어려운 일을 함께 ‘해결’해(solving) 내는 자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왜 뛰지 않느냐’고 나무라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뛰어야 하는지’와 뛰는 방법을, 그리고 뛰는 기쁨을 알려줘야 하며 숨차 힘들어하는 부원 옆에서 ‘페이스메이커’와 ‘플레잉코치’ 역할을 해야한다”고도 했다.
또 ‘직업’이라는 단어를 자리를 뜻하는 ‘직(職)’과 일을 뜻하는 ‘업(業)’으로 나누고는 “두 음절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큰 차이로 귀결된다”며 “자리를 얻으려는 욕심에 ‘업’을 하게 되면 사사로움이 개입되어 자신과 검찰과 국가를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들에게 성폭력·스토킹·전세사기 등 민생 침해 범죄에 엄정히 대응할 것을 주문하며 “국민이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훗날 정치수사에 주력했던 총장이 아니라, 민생범죄를 적극적으로 해결했던 총장으로 남고 싶다”는 뜻을 주위에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날 김 여사 수사·민주당 특검에는 ‘작심 발언’= 반면 김 여사 수사를 두고는 강경한 기조를 드러냈다. 이 총장은 이날 퇴근길에서 김 여사를 소환해 조사할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수사팀이 재편돼 준비됐으니 수사팀에서 수사 상황과 조사의 필요성을 충분히 검토해 바른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고, 그렇게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인사가 마무리되고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수사 진용이 재편된 이후 신속·엄정 수사를 주문한 기존 입장을 다시금 명확히 강조한 것이다. 다만 김 여사를 소환할 경우 대통령실과 검찰총장 간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환 조율 작업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총장은 이 자리에서 검찰 청사 내 술자리 진술조작 회유 의혹을 근거로 내세운 민주당의 ‘김성태 대북송금 사건 관련 검찰의 허위진술 강요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 발의에 대해서도 작심발언했다. 그는 “검찰은 이러한 특검은 검찰에 대한 겁박이자 사법부에 대한 압력이라고, 그래서 이러한 특검은 사법방해 특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화영 도지사에 대한 회유, 또 전관 변호사에 의한 회유는 이미 검찰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서 그러한 술자리 회유가 없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고, 민주당에서도 그 이후에 이에 대한 어떠한 반박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법치주의 국가라고 하면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수사 대상자가 검찰을 수사하는, 이러한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형사사법제도를 공격하고 위협하는 형태의 특검이 발의된 것에 대해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날 퇴근길 발언 말미에 오전 시 낭송에 대한 의미를 암시하기도 했다. 그는 “검사들이 여러가지 사법 방해와 관련된 공격을 많이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검찰 독재라고, 한쪽에서는 검찰이 2년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서 “그것이 검찰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바르고 반듯하게 정파와 이해관계, 신분과 지위와 관계없이 정도만을 걷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해주기를 일선 검사들에게 꼭 당부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