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필요성 첫 언급한 기재부
곧바로 금감원 상법 개정 정책세미나 참석 의지 전달
정부부처 상법 개정 드라이브 본격화 기대
[헤럴드경제=유혜림·서정은 기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현행 회사 외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내달 초 금융감독원이 ‘주주이익 보호’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을 다룬 정책세미나 개최를 추진 중인 가운데 기획재정부가 선제적으로 참석 의지를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처음으로 밝힌 데 이어 본격적인 정책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30일 금융투자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12일(예정) 금융감독원이 주관하는 상법 개정 세미나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 개정의 소관 부서인 법무부도 현재 참석 여부를 조율 중이다. 법무부까지 참여 의사를 타진하면 정부 부처간 논의도 보다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또 해당 세미나에선 상법 개정에 따른 실효성, 방향성 등의 윤곽도 어느 정도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 상법 개정 논의는 주관부처인 법무부의 제동으로 막힌 듯 보였지만 최근 기재부가 드라이브를 걸면서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27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있다”면서 “세법과 상법 등 밸류업에 관한 세제 인센티브, 지배구조와 관련한 구체안에 대한 의견 수렴 을 6~7월 진행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최 부총리가 상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현행법상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돼 있는데, 범위를 주주까지 넓혀 주주 이익 보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28일 밸류업 국제세미나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한편 법제화를 통해 경영 판단 원칙을 명료하게 해 실효성을 확보하는 등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학계도 상법 개정 필요성에 힘을 실고 있다. 이달 한국경제학회가 실시한 ‘K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조사에 따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 1위에는 ‘열악한 지배구조 문제(44%)’가 꼽혔다. 이어 지배구조 개선 대안을 묻는 질문에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까지 반영해야 한다’는 답변(1위·37%)이 가장 많았다. 밸류업의 성공 조건으로 상법 개정을 꼽은 것이다. 해당 조사는 지난 14~28일 국내 경제·경영학과 교수 등 27명을 대상으로 했다.
그간 학계와 자본시장에선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가 빠져있다는 점을 열악한 지배구조의 원인 중 하나라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회사 및 주주를 위해’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소액주주에게 불리할 수 있는 물적분할·합병이나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전환사채 발행 등을 의결해도 회사에 손실을 주지 않으면 이사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도 논의 테이블에 긍정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인 데다 당내에서도 공감대가 크기 때문이다.
한 민주당 정무위 의원은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이용우 전 의원이 이미 상법 개정 필요성을 잘 설명해줬다”며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담은 상법 개정안은 이번 22대에서도 의제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