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책에 쓸 만한 100% 국산 재생종이가 없었어요”
우리나라 종이 재활용률은 85.2%(2022년 기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종이나 책을 보면 재생종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시중의 재생종이 중 상당수에 나무를 베어낸 새 종이가 절반 이상 들어간다. 종이 쓰레기 100%로 만든 재생종이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출판업계와 환경단체들은 국내에서 버린 종이 쓰레기로 만든 재생종이를 값싸고 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3일 출판 및 디자인 업계 관계자들이 충남 천안의 한솔제지 공장을 찾았다. 한솔제지 천안공장은 재생종이를 비롯한 특수종이들을 만드는 곳이다. 이들이 제지 공장까지 찾아간 건, 그동안 국산 폐지 100%로 된 재생 인쇄용 종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각 가정에서 분리배출된 종이 쓰레기의 대부분 상자나 화장지로 재활용된다. 한솔제지 천안공장 기술환경팀 관계자는 “폐지의 90% 가까이 판지로 쓰인다”며 “일부 고품질의 폐지는 포장재 및 특수지로 생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솔제지는 업계의 수요를 반영해 폐지를 100% 재활용한 인쇄용 재생종이 ‘인스퍼에코 100’을 지난 4월 말 출시했다. 지난 9일 생산을 시작, 환경표지인증 획득을 준비하고 있다.
재생종이는 종이 쓰레기로 만든다. 종이 쓰레기의 잉크를 뽑고(탈묵), 물에 푸는(해리) 공정을 거쳐 만든 재생펄프가 원료다. 재생펄프의 함유량에 따라 폐지 재활용률이 정해진다.
국산 재생종이는 주로 폐지 재활용률이 30~40% 선이다. 폐지 재활용률 30~40%를 넘기면 환경부 인증 친환경 마크를 획득할 수 있어서다. 친환경 종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면 종이쓰레기는 30~40%뿐이고, 50~60%는 나무를 베어 만든 새 종이가 들어가는 셈이다.
폐지 재활용률이 높을수록 새 종이를 덜 쓰게 되고, 그만큼 나무를 덜 베어낼 수 있다.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이는 나무들은 종이 생산을 목적으로 만든 숲, ‘조림지’에서 가져오고, 베어낸 만큼 나무를 새로 심으니 순환이 된다는 게 제지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조림지는 다양한 나무들과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인 자연림을 밀어낸 자리에 들어서는 만큼 친환경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는다.
종이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에너지와 물 등을 15~20% 가량 줄이는 효과도 있다. 새 종이를 만들 때는 나무에서 섬유질을 추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가 크고 물과 화학 약품 등이 많이 들어간다.
문제는 폐지 재활용률 100%인 재생종이 수급을 그동안 수입에 의존해 왔다는 데 있다. 수입 재생종이는 가격도 5~10배 비싼 데다 운송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 무엇보다 국내 종이 쓰레기를 재활용하지 못한다.
국내에서 버린 종이쓰레기로만 만든 재생종이를 쉽게 쓸 수 있으려면 수요도 뒷받침돼야 한다. 종이는 많이 만들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구조기 때문이다. 일부 독립출판사나 환경단체 등에서 폐지 재활용률 100% 재생종이를 주문 제작하려고 해도 수량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재생종이가 일상 생활 곳곳에서 쓰인다. 독일에서는 종이의 4분의 3 가량 종이쓰레기를 재활용해 생산한다. 독일재생종이민관협의회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0%가 사용하는 종이의 80%를 재생종이로 충당했다.
재생종이가 새 종이보다 많다 보니 당연히 재생종이 가격이 새 종이보다 더 저렴하다. 출판업계에서는 재생종이 점유율이 8~10% 이상으로 올라가면 새 종이와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본다.
결국 일부 친환경 소비자뿐 아니라 대규모 출판사와 기업, 학교 등에서도 국산 100% 재생종이를 많이 찾아야 저렴한 가격에 쉽게 재생종이를 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서재훈 한바랄 출판사 대표는 “해외에서는 초기 재생종이 생산이나 구입 시 정부가 지원해 재생종이 가격이 내려갔다”며 “다양한 재생종이가 대량 생산될 수 있도록 국산 100% 재생종이 수요를 모으면서 제지업계와 제작을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