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에미상서 8관왕
달라진 할리우드·K콘텐츠 힘 발휘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원제 BEEF)가 15일(현지 시간) 미국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성난 사람들(원제 BEEF)’ 이성진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에미상까지 석권하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한국인 이민자)’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계 배우·감독이 주축을 이룬 ‘성난 사람들’은 이날 에미상에서 감독상, 작가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분야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앞서 골든글로브 3관왕과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 4관왕 등에 등극한 것을 고려하면 미국 내 주요 시상식을 모두 휩쓴 것. 주인공을 맡았던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브 연 역시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에 이어 에미상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계 인사들이 중심이 되는 콘텐츠가 할리우드 무대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배경엔 할리우드의 변화된 분위기와 경쟁력을 강해진 한국 콘텐츠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기존 할리우드는 소수 인종에게 인색했다. 스티브 연이 올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는 것조차 아시아인 최초 수상이란 기록이 남겨질 정도다. 종전까지 다양성에 인색했던 할리우드가 한국계 이민자 콘텐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영화 ‘미나리’(2021)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미나리’는 1980년 미국 아칸소로 이주한 한인 가정이 겪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이 작품은 배우 윤여정에게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겼고,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과 미국배우조합상 등 굵직한 시상식에서도 수상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당시 골든글로브에선 미국 영화인 ‘미나리’ 한국어로 전개된다는 이유로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로 오르면서 아시아계 작품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골든글로브는 이를 의식한 듯 올해 심사위원 규모를 기존의 3배로 늘리고 이들의 출신 국가와 성별, 인종을 다양화했다. 덕분에 ‘성난 사람들’은 TV 미니시리즈 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주연상(앨리 웡)을 가져갔다.
골든글로브에서 한국계 캐나다인 신인 감독 셀린 송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가 5개 부문의 후보로 꼽힌 것 역시 이러한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패스트 라이브즈’의 수상은 불발됐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배우인 그레타 리와 한국 배우 유태오가 주연을 맡고, 이미경 CJ ENM 부회장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으로 ‘미나리’처럼 한국어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에 앞서 작년엔 저스틴 전 감독이 공동 연출한 애플+tv 드라마 ‘파친코’가 포브스 선정 올해의 한국 드라마에 선정되는 등 호평받은 바 있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그린 드라마다.
이 같이 비주류에 머물렀던 한국 이민자들의 작품들이 주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다양성을 포용하며 변화하려는 미국 업계의 최근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NBC는 ‘성난 사람들’의 수상과 관련해 “‘성난 사람들’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며 “대신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자기들의 공간을 만들면서 주류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K팝 등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쌓은 K-콘텐츠 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K-콘텐츠의 인지도와 친밀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계 제작진의 활약이 많아지며 시너지를 이뤘다는 평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지난 2020년 오스카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이듬해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음악 분야에선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그룹이 매년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싱글 차트를 휩쓸고 있다.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고 있는 셈이다.
K-콘텐츠가 한국적 색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강점도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저스틴 전 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이 미국 내 다른 소수자나 이민자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를 준다”며 “내 이야기를 하지만 공감대가 형성되고 (다른 이들과) 연결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