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지원금 지급과 독일 설득에 헝가리 ‘양해’

오르반 총리 “헝가리는 이 결정에 참여 안 해”

반대 입장 유지하면서 회의장 불참으로 타협

우크라, EU 가입에…헝가리, ‘나홀로’ 반대했던 이유는? [세모금]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에 있는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이날 의회에 출석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EU의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 모두 반대한다고 밝혔다. [연합]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을 시작하기로 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반대해온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회의에서 퇴장하며 가입 협상이 승인됐다.

EU는 14일 브뤼셀 본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 개시와 500억유로(약 71조원)의 추가 자금 지원에 동의했다. 이날 회의에선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퇴장하며 기권을 선택한 가운데 나머지 26개 회원국 정상 모두가 찬성해 가입 협상이 승인됐다.

이날 합의는 예상 밖이라는 분석이 많다. 친러시아 성향인 오르반 총리가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EU에 가입하기 위해선 기존 회원국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헝가리는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유럽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라며 가입을 극렬히 반대해 왔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 반대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회의장에 불참하면서 가입 협상을 양해하는 타협을 했다. 회의가 끝난 후 오르반 총리는 소셜미디어(SNS)에서 “우크라이나와의 가입 협상은 나쁜 결정”이라며 “헝가리는 이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U 지원금이 필요한 헝가리…비토권으로 협상한 것

EU는 회원국의 고른 발전을 위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회원국에게 다양한 명목의 경제 지원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회원국의 정책이 인권과 민주주의 등 EU의 가치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지급을 거부할 수 있다. 헝가리의 경우 친 푸틴 성향인 오르반 총리 정권이 언론 탄압과 사법부 장악을 시도한다는 이유로 EU가 지원금 지급을 수년간 거부해왔다.

헝가리는 각종 포퓰리즘 정책으로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려 EU 지원금이 절실하다. 이에 전날 EU는 헝가리에 대한 자금 지원 동결을 일부 해제하면서 회유에 나섰다. 헝가리는 지난 2021년 300억유로(약 42조원) 규모의 코로나19 부흥 기금을 동결 당한 바 있는데, EU가 13일 오후 늦게 102억유로(15조원)를 우선 지급하기로 했다.

헝가리 총리실은 앞서 “EU가 헝가리에 대한 지원금 동결을 ‘전부’ 해제하면 반대 입장을 철회할 준비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오르반 총리는 앞서 중재에 나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9시간의 밀실 협상 끝에 회의에서 퇴장하는 것으로 타협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우크라, 국제적 고립 타개에 도움 받을 것

왼쪽부터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의장이 지난 2월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다. [AP]

우크라이나는 EU 가입에 한발짝 다가서면서, 최근 전쟁의 교착 및 국제적 고립 타개에 도움을 받게 됐다.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번 협상 개시는 서방의 지원 약화를 우려하는 우크라이나의 사기를 진작 시킬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의장은 이날 결정에 대해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유럽 국민과 우리 대륙의 희망에 대한 명확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날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SNS에 올린 글에서 “이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이자 유럽 전체의 승리”라며 “역사는 자유를 위한 싸움에 지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든다”며 환영했다.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셸 의장은 이날 결정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우리가 그들 편에 있다는 매우 강력한 신호”라고 자평했다.

한편 미국 상원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안을 다음주에 통과시키기 위해 15일부터 시작되는 연휴 일정을 연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2일 미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