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국제질서 맥락으로 이해하기’ 저서 발간
한일 수산물, 한미 철강·세탁소 분쟁 등 승리 이끌어
어공 출신 산업부 초고속 승진 불구 퇴직후 독립 중재인 활동 중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한일 수산물 분쟁 등 세간의 이목을 집중받았던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우리나라의 승리를 이끈 주역이었던 정하늘 국제법질서연구소 대표가 지난해 공직을 떠난 후 첫 저서 ‘21세기 국제질서 맥락으로 이해하기’를 출간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을 그만 둔 후 국제법을 연구하는 독립기관인 국제법질서연구소를 세웠다. 정 대표는 2019년 4월 우리 정부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처와 관련한 WTO 분쟁 2심(최종심)에서 승전보를 올린 주역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2월에 내려진 1심(패널심)에선 패소한 터여서 2심 승리는 예상 밖으로 여겨졌다. 후쿠시마 수산물 사건 같은 에스피에스(SPS·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에 관한 협정) 분쟁에서 피소국이 이긴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미국 뉴욕주립대철학·정치학과를 거쳐 일리노이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법학전문석사(JD)를 딴 뒤 워싱턴DC에서 통상전문 변호사자격증을 취득했다. 미국 대학 유학 때 이종격투기를 하고, 군 복무 시절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파견된 청해부대 2진으로 가 사령관 법무참모로 일한 이색 경력으로도 화제가 됐다.
정 대표는 2015년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법률평가기관으로 손꼽히는 영국 체임버스앤드파트너스(Chambers & Partners)가 선정하는 국제통상 분야의 ‘Leading Lawyer(Global/Asia-Pacific)’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렸다. 또 2017년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심당국제거래학술상을 최연소로 수상해 떠오르는(up and coming) 변호사’에 뽑혔다.
이후 2018년 4월 경력개방형 직위로 산업부에 들어와 2년 반 만에 3급 부이사관이 됐다. 일반 공무원들은 서기관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는데 통상 14~15년가량 걸린다. 정 과장의 사례는 전 부처를 통틀어 개방형 직위 공무원 가운데 첫 승진 사례다.
정 대표는 산업부 재임 50개월 동안 우리나라가 당사자로 오른 세계무역기구 분쟁 40건 중 11건이 진행돼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한국산 철강·변압기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미국의 ‘불리한 가용정보’(AFA) 제도, 일본산 공기압 밸브에 대한 한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 관련 분쟁이 그 예다.
지난해 5월 산업부를 나와 개발도상국의 WTO 분쟁 대응을 지원하는 준국제기구 ACWL(Advisory Centre on WTO Law)의 외부변호인(External Counsel)으로 임명됐으며 현재는 독립연구기관인 국제법질서연구소의 대표이자 국제중재인으로서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정 대표는 ‘21세기 국제질서 맥락으로 이해하기’를 출판하려 용기를 낸 데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첫번째 이유로 “이 책이 망라하는 범위가 워낙 넓기에, 모든 관련 내용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개인은 어차피 없을 것이라는 점”이라며 “필자가 나름 전문성을 가진 분야도 이 책에 일부 포함돼 있으니, 저술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격은 있다”고 설명했다.
두번째 이유로는 “이책을 통해 틀린 예측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이 곧 결격사유는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했다. 그러면서 공격적인 현실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가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서문에서 “정치 현상을 예측하려는 자는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하고 근거없는 확신을 표시하면 안 되며, 나중에 보았을 때 놀라움과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한다”고 서술한 것을 예로 제시했다.
이 책을 출간한 세번째 이유는 “앞으로 오랜 시간 연구를 국제법질서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에 앞서 국제질서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책을 서술하는과정에서 나름대로 국제질서에 관한 이해의 틀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이 책을 통해 패권 전환기에 대한민국의 대외정책은 크게 두 가지 상호 대립하는 전략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조언한다. 첫번째 전략 목표는 미국과 서방에 대한민국이 자유 진영의 일원이라는 신뢰를 확고히 심어주는 것으로 제안한다. 두번째 전략 목표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것을 꼽았다.
정 대표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하지만 결여된 것은 사회적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결국 자유민주주의로부터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용적인 시민의식과 사회문화를 제고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대한민국이 당면한 가장 큰 숙제일 것”이라고 책을 마쳤다.
※[세종백블]은 세종 상주 기자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에 대한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은 물론, 정책의 행간에 담긴 의미, 관가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연재물입니다.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무원들의 소소한 소식까지 전함으로써 독자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