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3회 공매도 금지 기간 外人 코스피 21조·코스닥 3조 이탈
“‘블랙스완’급 위기 닥쳤던 과거와 현재 상황 달라…‘엑소더스’ 가능성 ↓”
“주가 변동성 극대화 속 반도체·車·IT 섹터 내 초대형주에 外人 투자 집중”
외신 “韓,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걸림돌…일부 주식 거품 형성 예상”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과거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 맞서 주가 방어 차원에서 실시된 세 차례의 공매도 금지 기간 동안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증시에서 총 24조원 규모의 주식을 팔고 떠났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8개월간 실시할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의 경우 과거와 달리 평시적 상황 속에 전격적으로 내려진 조치란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예전만큼의 급격한 외국인 자본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정책 안정성의 훼손에 따른 국내 증시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심화됨으로써 벌어질 수 있는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외국인 투자 감소세가 더 큰 문제란 지적에 힘이 실린다.
外人, 과거 공매도 금지 기간 코스피 21조3억원·코스닥 2조7664억원 이탈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과거 3회에 걸쳐 실시된 공매도 전면 금지 기간 외국인 투자자의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대한 순매도액은 23조7667억원(코스피 21조3억원·코스닥 2조766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은 지난 2008년 10월 1일부터 2009년 5월 31일(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8월 10일부터 11월 9일(유럽발 재정위기), 2020년 3월 17일부터 2021년 5월 2일(코로나19 팬데믹)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시장별로 구분했을 때 외국인 자금 유출세가 더 뚜렷했던 곳은 코스닥 시장이다. 1~3차 공매도 금지 기간 모두 각각 1조3894억원, 1조151억원, 3619억원 상당의 순매도액을 기록하면서다.
코스닥 시가총액(시총) 중 외국인 보유 비율 하락세도 명확했다. 1차 공매도 금지 실시 전 12.98%에 이르렀던 코스닥 중 외국인 비중은 6.66%까지 급감했고, 2차(10.59→8.93%)에 이어 3차(10.81→9.59%) 공매도 금지 시기까지도 외국인 비중의 감소세가 한눈에 명확하게 보일 정도였다.
코스피 시장의 경우 1차 공매도 금지 기간(2조6913억원 순매수)과 2차 공매도 금지 기간(1조4701억원 순매도) 외국인 투자금 흐름의 방향이 엇갈렸다.
하지만, 가장 최근인 3차 공매도 금지 기간엔 무려 22조2215억원에 달하는 외국인 투자금이 국내 시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코스피 시총 중 외국인 비중은 38.59%에서 35.63%로 빠르게 줄기도 했다.
전문가 “外人 ‘엑소더스’ 가능성 낮다”
과거 공매도 금지 기간을 돌이켜 볼 때 이번 4차 공매도 금지 기간에도 대규모 외국인 투자금 유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국내 자본시장을 휘감는 모양새다.
최근 글로벌 주식 수탁은행인 스트레이트스트리트은행(SSBT)이 한국 주식 전산 대여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과 글로벌 초대형 증권사 메릴린치가 내년도 한국 시장에서 대차 서비스로 벌어들이는 수익 목표치를 ‘없음’으로 설정했다는 보도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빠르게 키웠다.
금융당국이 즉각 메릴린치 관련 뉴스는 사실과 다르며, SSBT의 조치는 전산 시스템 정비 과정일 뿐 한국 시장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꾸거나 본격적인 이탈 채비를 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취지로 적극 진화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로 읽힌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4차 공매도 금지 시기엔 과거 1~3차 때와 같은 대규모 외국인 자본 유출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증권 관련 학계 관계자는 “이전 공매도 기간 외국인 투자금 유출 현상은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라 한국은 물론 신흥국(EM) 증시 전체에 대한 투자금 회수 과정에 발생한 일로 공매도 금지 조치가 자금 회수 속도를 좀 더 높이는 역할 정도를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기대감 덕분에 ‘위험 자산’에 대한 투심이 나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선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한국 증시에서 빠르게 자금을 회수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매도 전면 금지 이후 첫 거래일이던 6일부터 전날까지 외국인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각각 1조4564억원, 2453억원 규모의 순매수세를 보였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주가 변동성이 극대화된 상황 속에 외국인 투자자는 반도체, 자동차, 헬스케어, IT 등 섹터 내 초대형주로 선택지를 좁혀 투자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매도란 주가 제어 장치가 사라진 상태에서 중소형주는 물론, 2차전지 대형주 등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종목에 대한 투자에선 사실상 손을 뗄 것”이라고 전망했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걸림돌…2차전지 ‘과매수’ 개인, 外人 빈자리 메우기 한계”
이번 공매도 금지를 두고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그동안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온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자들이 이번 정책 결정에 대해 가장 의문을 품는 지점은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통용되는 정책의 호환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듯 보이는 ‘공매도 금지’란 파급력이 큰 카드를 꺼내든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라며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선 예측 불가능한 한국 시장이 국가별 투자금 배분 시 EM 최우선 순위를 받기 힘들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한국 대신 대만 시장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이겠다는 의견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들도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 연일 비판적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금융 당국의 공매도 전면 금지가 한국 증권시장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해 보도했다.
리서치 기업 스마트카르마의 브라이언 프레이타스 애널리스트는 “공매도 금지가 과도한 밸류에이션(가치 산정)에 제동장치 역할을 하지 못해 개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일부 주식 종목에 거품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난 3차 공매도 금지 기간 ‘동학개미운동’ 등으로 외국인의 빈자리를 채워줬던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이번 4차 공매도 금지 기간엔 나타나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코스피·코스닥 시장 전반엔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 수장은 “2차전지주를 중심으로 올 한 해 ‘과매수’ 현상이 벌어졌고, 해당 물량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 추가 투자붐이 발생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고금리 상황에서 개인들이 외국인의 수급 공백을 메울지 미지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