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3구역, 지난달 30일부터 이주 시작
8300가구 달해…인근 재개발구역 전·월세 씨말라
[헤럴드경제=이준태 기자] “서울 한복판에 이런 땅이 놀고 있다고 하니까 개발은 해야 되는데 어렵게 사는 사람들로선 나가라고 하니 어디로 갈지 막막하죠. 목돈이 없으니 시골이라도 가야 할 거 같아요. 근처 재개발구역 집들도 매물이 없대요.”(한남3구역 거주민 70대 김모 씨)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순천향대병원, 이태원 등과 가깝지만 서울 중심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붕이 무너지거나 대문 밖으로 덩굴이 우거질 정도로 낙후됐다.
한남3구역은 지난달 30일부터 주민 이주가 시작됐다. 지난 2003년 한남뉴타운 조성 이후 20년 만이다. 구역 내 이주 대상은 관리처분계획인가 기준 총 8300여가구로, 이 중 세입자가 6500여가구에 달한다. 이날도 이삿짐트럭을 대문 앞에 주차하고 이주를 준비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사업시행자인 한남3구역 조합은 이주 준비를 위해 지난 9월부터 지난달 사이 조합원과 세입자 대상으로 이주비용 신청을 사전 접수했고 내년 5월 15일까지 자진 이주를 접수받을 방침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이미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주인들은 일찌감치 이주를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남3구역 세입자들은 인근 지역으로 가기 어렵다. 아직 관리처분인가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인근 한남뉴타운 내 지역은 고사하고 용산구 후암동, 성동구 약수동 다세대주택 밀집지역 등의 전·월세 매물도 동이 났기 때문이다. 한 조합 관계자는 “이주 초창기지만 인근 매물이 부족해 이주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남뉴타운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3구역 이주가 시작되면서 점점 임차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집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임대인은 개발계획 때문에 수리를 할 명분이 없으며, 상태가 그나마 괜찮은 집들도 세입자가 들어차 있어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남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 A씨는 “수요는 많은데 들어갈 집이 없으니까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족족 나간다”며 “타 구역 사람도 3구역이 이주하길 기다리고 공실로 놔둘 사람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보광동 소재 공인중개업소 대표 B씨는 “3구역이 이주한다는 소식과 한남뉴타운을 비롯해 용산구 다세대주택 등에 세를 줄 물건이 없다는 소식에 상계동 등지에서도 손님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인근 재개발구역의 임대차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은 수준이다. 수요가 많고 이주 초창기지만 문의가 이어짐에도 집수리 상태가 좋지 않고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특성상 임대료를 크게 올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간혹 이주가 시작되자 집주인이 방 2개가 있는 50㎡ 후반대 빌라를 전세보증금 2억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호가를 올린 곳도 있다. 현재 29.7㎡ 기준 방의 보증금과 월 임대료는 500만원에 30만원 수준인데, 보증금이 1000만~2000만원가량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미 용산구 후암동과 성동구 약수동 다세대주택과 단독·다가구주택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한남뉴타운 거주민의 이주 문의는 잇따르고 있다. 해방촌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주시기 전부터 한남3구역 내 주민이 움직이고 있다”면서 “해방촌도 신축 건물이 들어섰고 이미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방 2개 있는 빌라 전세의 경우 가격대가 연초에 비해 5000만~1억원 상승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향후 집주인들이 이주를 시작하면 성동구나 주변 자치구의 구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임대차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주비 대출은 이달 16일부터 실시된다. 무주택자·1주택자의 경우 1차 이주비 대출에서 종전가치평가액의 50%를 받을 수 있는데 금리가 4%대로, 시중 금리보다 낮다. 한남동과 보광동 등의 지가가 높아 봄이사철이 되면 인근 지역의 구축 아파트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한남뉴타운 내 다른 구역의 상가 공실은 사라지고 있다. 지역 내 상인들이 ‘동네 장사’를 했기 때문에 타 지역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보광초등학교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3구역 상인들이 이주기간이 가까워 오면서 계약기간 만료와 동시에 이슬람사원에서 보광동 일대로 넘어왔다”며 “30㎡ 남짓 상가가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으로 비쌌던 공실 상가가 채워졌다”고 전했다.
다만, 많아진 임차 수요 대비 공급물량이 부족할 수 있지만 전셋값 상승에 큰 영향은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부족한 공급으로 인근 전세 가격이 상승한다면 수요자들은 더 저렴한 외곽을 찾을 것”이라며 “재개발은 아파트 재건축과 달리 가구마다 평형대와 구조가 다르다. 한남3구역은 서민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열악한 주민이 많이 살아 인근 전셋값을 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남3구역의 면적은 38만6395.5㎡로, 신축 연면적은 104만8998.52㎡에 달한다. 재개발을 통해 지하 6층~지상 22층 높이의 공동주택 197개동, 총 5816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분양주택은 총 4940가구, 임대주택은 876가구다. 이주비만 종전 감정평가액 5조4000억원 중 50%인 2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재개발이 완료되면 용산구 한남동·보광동·이태원동·동빙고동 일대 111만205㎡가 아파트촌으로 거듭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