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교보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은 신창재 회장 지분을 제외한 재무적투자자들(FI)의 선택에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교보생명은 FI의 찬성을 끌어내기 위해 지주사 전환시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 레이스 시작…주총이 고비
14일 교보생명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지난 9일 이사회를 통해 지주사 설립과 관련한 내용을 이사들에게 보고했다. 이 자리에는 신창재 회장과 풋옵션 분쟁을 벌이고 있는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이철주 사외이사(어피너티 부회장)도 참석했다.
교보생명은 이번 이사회 보고를 시작으로 오는 7~8월 중으로 예상되는 이사회 의결과 주주총회 특별결의, 금융당국 지주사 인가 승인, 지주사 설립등기 등의 절차를 거쳐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지주사를 출범한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를 신설한 후 교보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의 안건을 이사회와 주총에 올릴 예정이다.
첫 단계인 이사회 결의를 받으려면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그간 이사회에서 표결에 부친 안건들이 대부분 반대 없이 통과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 추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는 주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총 결의 요건은 출석 주식 수 과반수 찬성과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이다.
주총 통과는 신 회장과 교보생명이 우호적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교보생명 지분은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33.78%) 및 특수관계인이 36.91%를 들고 있고, 나머지는 FI들이 대부분 보유하는 구조다. 주총 결의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FI 일부를 반드시 우호지분으로 확보해야 한다.
FI 중에서는 풋옵션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지분이 24.01%로 가장 많다. 그 외에도 미국 사모펀드(PEF)인 코세어 캐피탈이 9.79%, 캐나다 온타리오교직원연금펀드(OTPP)가 7.62%, 한국수출입은행이 5.85%, 어퍼마 캐피탈이 5.33%를 각각 보유 중이다.
2대 주주 어피너티, 반대 가능성도 고려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어퍼마 캐피탈은 신 회장 측과 풋옵션 분쟁을 벌인 주주들이다. 어퍼마 캐피탈의 경우, 어피너티처럼 풋옵션 행사 가격을 놓고 신 회장 측과 갈등을 빚다가 2019년 7월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신청했으나 지난해 5월 신 회장 측의 주식매수 의무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어피너티 측과의 공방은 현재진행형이다. 어피너티 측의 의뢰를 받은 딜로이트안진이 부당하게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출해 풋옵션 행사 가격을 의도적으로 고평가했다는 교보생명 측 주장이 2심까지 증거 부족 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이 지난 9일 상고장을 제출함에 따라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하는 상황이다.
2대 주주인 어피너티 측의 입장은 아직 안갯속이다.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을 때도 찬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보다 신 회장에게 풋옵션 의무를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전략을 폈다. 어피너티 측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공식 입장이 없다”고 했다.
다만 두 FI들이 풋옵션 이행이 선결과제라며 반대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교보생명은 최소 14% 이상의 우호 지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코세어 캐피탈이나 OTPP, 한국수출입은행 등 다른 FI들은 그간 교보생명의 풋옵션 분쟁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바 없다. 지주사 전환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여서 향후 주총에서 표 대결이 펼쳐지면 결과를 단언하기 쉽지 않다.
FI 설득 묘수는…“보험주 하락세에 지주사가 엑시트 유리”
교보생명은 FI들에 지주사 전환이 엑시트에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워 표 모으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FI들이 교보생명의 지분을 취득한 2010년 전후에 비해 보험사들의 가치가 대체로 하락한 데다, 생보업권에 불리한 경영환경이 계속되면서 원하는 가격대엔 엑시트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자극하는 것이다.
실제 생보업계 1위인 삼성생명은 2010년 초반만 해도 주가가 10만원을 넘었지만, 최근 1년 사이엔 6만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7000~8000원에서 움직이던 주가가 10년새 2500원대로 하락했다.
지주사 전환 후 증권, 자산운용 등 비보험 사업포트폴리오를 강화함으로써 관계사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중장기적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은 셀링 포인트다. 현재는 보험업법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보험업 자회사 업무 범위가 제한적이라 사업 확장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 금리 변동성에 좌우되는 채권에 대부분의 자산을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고, 관계사가 늘어나면서 연결실적이 증가하는 증익 효과도 노려볼 수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지주사로 전환하면 사업 확장에 제한이 있는 보험업법이 아니라 금융지주회사법을 적용받게 돼 사업 영역이 넓어지고 자회사 투자여력도 확대될 수 있다”며 “지주사 전환 후 기업가치가 상승하면 FI가 보유한 지분을 사려는 투자자들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FI들과 만나서 얘기를 해봐야 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지주사 전환 이슈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