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 지난해 한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김모(29)씨는 남 몰래 회사에서 작은 일탈을 즐기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회사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를 한 움큼 챙겨 집에 가져가는 것. 그렇게 모은 커피믹스를 50개 묶음으로 당근마켓에 팔면 소소한 용돈벌이가 된다.
김 씨는 “어차피 직원 먹으라고 갖다 놓은 것들인데 가끔씩 챙겨간다고 회사에서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중고거래로 낱개 커피믹스나 티백을 묶어서 파는 건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이 직장인들의 은밀한 ‘소확횡’ 창구가 되고 있다. 소확횡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줄인 말로, 회사 물건을 소소하게 사적으로 소비하면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의미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쓰이는 신조어다. 당근마켓에는 유사한 ‘당근거지’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커피믹스·티백·햇반·과자 등 회사 식품부터 볼펜·A4용지·테이프 등 회사 사무용품까지 “당근마켓에 올라오는 낱개 상품은 의심부터 해봐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당근마켓엔 ‘커피믹스 개당 300원’, ‘녹차 티백 50개 5000원’ 등 간식을 포장 없이 묶어서 파는 게시물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이러한 소확횡에 대한 직장인들의 의견은 비교적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잡플래닛은 이용자 469명을 대상으로 소확횡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회사 물품이 볼펜인 경우 응답자의 60%가 ‘집에 가져가도 괜찮다’고 응답했다.
간식류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렸다. ‘간식을 집에 챙겨 갈 수도 있다’는 응답이 53%. ‘회사에서 일하면서 먹으라고 둔 건데 집에 왜 챙겨가냐’는 응답이 47%로 팽팽하게 대립했다. 물티슈의 경우에는 사적으로 챙겨가면 안 된다는 응답이 72%를 차지했다.
하지만 소확횡은 원칙적으로는 절도에 해당한다. 회사 비품을 사적으로 쓰는 횟수가 잦거나 누적액이 크고 마음대로 처분하려고 했다면 징계는 물론 형사처벌 될 가능성도 있다. 절도죄는 6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정도로 형량이 무겁다.
실제로 회사 창고에서 커피믹스를 훔쳐 되팔다가 걸린 식품업체 직원이 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당시엔 ‘지나친 대응’이라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빼돌린 커피믹스가 3400만원어치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이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