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코로나가 벌써 3년째인데, 왜 감기약은 항상 부족해? 사재기라도 해야 하나?”
중국을 주시해야 한다. 지금 국내 감기약 시장 구조가 그렇다. 해열진통제 성분 원료의 80%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돌연 수출을 제한하면 그야말로 해열진통제 비상이다. 코로나, 독감이 겹쳐 유행하는 시기에 수급 상황까지 어려워지면 그 땐 생명을 좌우할 재난이 될 수 있다.
최근 코로나뿐 아니라 감기 환자까지 급증하면서 대표 해열진통제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원료의약품등록(DMF) 공고에 따르면, 등록된 아세트아미노펜 113건 중 중국에서 제조되는 원료가 90건으로 80%에 달한다.
만약 중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수출이 제한되기라도 하면 국내에서 감기약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구조다.
마치 요소수나 제설제 상황과도 유사하다. 중국에 의존하던 요소수가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 이후 국내 품귀현상이 벌어져 물류대란으로도 비화됐었다. 최근엔 사실상 전량 중국에 의존하는 제설제도 중국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국내에선 제설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시장 가격 경쟁 등에 밀려 중국에 수입을 상당수 의존하다가 중국으로부터 공급이 어려워지면 일순간 품귀현상이 벌어지는 식이다. 아세트아미노펜도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이미 조짐은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중국 내 코로나가 크게 확산한데다 중국 정부도 방역을 완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 내에선 해열진통제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려 한다는 우려다. 중국 보따리상이 국내에서 감기약을 대량으로 구매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이미 시내 곳곳 약국에선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제제와 소아용 해열제 등이 품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워낙 코로나와 감기 환자가 많아지다보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만약 중국에서 들여오는 원료에 문제라도 생기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중국발 감기약 대란의 움직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처는 “주중한국대사관과 원료수입사 등으로부터 확인한 바 현재까지 중국 정부가 의약품 원료의 수출을 제한하는 등 특이동향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제약사들에 긴급생산, 약가 인상 등을 추진하며 감기약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노력 중이다.
정부는 앞서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650㎎(총18품목)의 약가를 정당 50~51원에서 70원으로 올리고 긴급생산 명령을 발동한 바 있다. 이렇게 아세트아미노펜의 가격이 인상된 이후 제조·수입사의 공급량은 11월 넷째주 1253만정에서 12월 첫주 3170만정에서으로 증가했다.
복지부는 “이달부터 제조·수입사의 총 공급량은 당초 집중관리 기간 목표 수준인 주당 1661만정을 상회하고 있다. 이런 공급 추세가 지속된다면 수급 문제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로선 단가가 높은 다른 제품 생산 대신 단가가 낮은 아세트아미노펜을 생산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중국에 의존하는 원료 비율을 낮추고 국내 공급율을 높여 자급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