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농약중독으로 장애…진로 바꿔 32년간 판사 생활
“옳고 그름 가리는 건 신의 영역…인간이 부족함 알고 메워야”
현장검증 오히려 열심히…‘금고형→벌금형’ 바꾸기도
변호사 일도 사실 가리는 일, 판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희망은 한번에 그려지지 않아…일상에서 내가 꿈꿔야”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판사 일이 굉장히 고된데, 해낼 수 있겠어요?” 이기광(67·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중원 대표변호사가 1985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판사 임용을 위해 면접에서 받은 질문이다. 그는 고등학생 때 다리를 못쓰는 장애를 떠안았다. 의례적인 질문인지, 자신의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인지 애매한 물음이었다. 이 변호사는 “해보지 않아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면접이 끝나고 한달 넘게 마음이 불안했다. 그렇게 원했던 판사 임관을 눈앞에 두고 혹 자신없는 답을 했을까 싶었다.
이 변호사는 판사 시절 오히려 “배려를 받으면서 지냈다”고 말했다. 법관생활 중 초임판사 시절 군산과 김천을 거치고, 법원장을 맡으며 울산에 머무른 시절 외에는 26년 동안 줄곧 대구지역에서 판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고등법원 배석판사할 때 2층에 사무실을 배정받았어요. 일 자체를 배려받았으면 저도 불편했겠죠. 하지만 업무 자체에서 편견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경북 군위 출신인 이 변호사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공부를 위해 대구에 있는 고종사촌집에서 지냈다. 그 집에서 쌀자루에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농약을 쓴 게 화근이었다. 농약성분이 스며든 쌀로 밥을 지어 먹은 것이었다. 어느 날 발끝이 움직이지 않았고, 한의원을 갔지만 차도가 없었다. 나중엔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고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응급차에 실려 경북대병원을 가서야 ‘농약을 먹은 게 아니냐’는 물음을 받았다. 원인을 아는 데까지 2~3개월이 걸렸고, 마비된 다리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에선 친구가 업고 다녔고, 대학입시 땐 아버지 등에 업혀 수험장을 드나들었다. 어렵게 판사가 되었지만, 이미 부친은 이 변호사가 대학 때 작고했다.
수험생활에서 극복해야 할 게 신체장애였다면, 판사가 되고 난 다음엔 사건 당사자들의 편견을 이겨내는 게 과제였다. “재판 받는 사람 입장에서 저 판사가 시각이 편협하다고 하거나, 사건을 왜곡한다는 인상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재판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얘기가 구약에 나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신의 영역일 수 있지만, 인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그걸 메워야죠.” 장애가 있으니 사실관계에 어두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오히려 현장검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번은 군용트럭을 운전하던 사람이 사고를 내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상대방 차량 운전자가 중상을 입었고 함께 탔던 아내가 사망했다. 사람이 죽었으니, 가해차량이 신호를 위반했으면 실형을 선고하는 게 맞는 사안이었다. “현장을 가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블랙박스도 있고 CCTV도 있으니 신호위반을 잡지만, 2005년만 해도 이걸 판단하기가 어려웠어요. 사고가 난 곳을 가보니 신호체계상 가해차량이 신호위반을 해서는 사고가 날 수 없었어요. 현장에 나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심에서 금고형 실형을 선고받았던 운전자는 이 변호사가 맡은 항소심에서 벌금형에 그쳤다.
32년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난 이 변호사가 극복해야 할 새로운 편견은 ‘전관예우’다. “처음에 개업하면서 참 듣기 싫었던 말이 ‘메뚜기도 한철’이라거나 ‘물 들어올 때 배 띄우라’는 말이었어요. 반감을 드러내진 않았습니다. 변호사가 하는 일이 돈과 연결되니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판사로 일할 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의뢰인이 하는 얘기를 정확히 파악해서 재판부에 전달하고 그게 받아들여지면 그 자체가 기쁨이고 보람이죠.”
이 변호사는 원래 이과 진학을 염두에 뒀다. 하지만 학창시절 겪은 시련이 진로를 바꿨다. 공직에 몸을 담으면 그나마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그 순간에도 희망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꿈이라는 건 한 번에 그려지진 않아요.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였더라도 가슴에 꿈을 가져야 하고, 이것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일상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고, 저녁에는 어떻게 노력했는지 생각하다 보면 10년뒤, 20년 뒤엔 나아진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기광 변호사는 △대구고·영남대 법학과 △사법연수원 15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고법 부장판사 △대구고법 수석부장판사 △울산법원장 △경북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법무법인 중원 대표변호사
jyg97@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