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화현-英 애셔스트 합작법무법인 설립 인가

다국적 로펌 국내변호사 고용, 자문 업무 수행 가능

해외 로펌은 지분 50%미만으로 제한, 업무도 한정

우리나라 사무소 둔 해외로펌 28곳…국내 규제 강해

초대형 다국적 로펌들 문 열었다가 국내 철수하기도

로펌 매출 세계 200위 이내 김앤장·태평양·광장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법률시장을 개방한 지 11년만에 우리나라 로펌과 외국로펌 간 ‘합작 법무법인’이 탄생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해 법률시장을 개방하는 3단계 조치에 따른 첫 사례다. 국내 변호사를 고용하는 다국적 로펌의 등장이 꾸준히 이어질 것인지 주목된다.

법무부는 지난 29일 우리나라의 법무법인 화현과 영국 로펌 애셔스트(Ashurst) 간 합작법무법인 설립을 인가했다. 합작법무법인은 국내변호사와 외국법자문사를 활용해 양국의 법률사무를 대리할 수 있는 로펌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2011년 7월 법률시장을 개방했다.

2001년 설립된 법무법인 화현은 변호사 30명 규모의 중소형 로펌이다. 서울 서초구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사법연수원장 출신의 성낙송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재직중이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몸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애셔스트는 1822년 설립됐고,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100위권 안에 드는 글로벌 로펌이다. 해외 30곳에 사무소를 두고, 파트너 변호사만 478명, 법률자문 인력은 1600명에 달하는 대형 법률회사다. 금융이나 부동산 같은 전통적인 자문 분야 외에 디지털경제나 에너지 자원 분야도 서비스한다.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로 불리는 합작법무법인 설립이 주목받는 이유는 외국 로펌의 국내 진출이 실질적인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외국변호사는 국내에서 변호사 업무를 맡지 못한다. 하지만 합작법인을 세우면 국내 변호사를 고용하고 국내법 법률자문업무를 취급할 수 있다. 법무부는 “국내 법률시장의 경쟁을 촉진해 국민에게 더 넓은 선택의 폭을 제공하고, 국내 법률서비스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 사무소를 둔 해외 로펌은 총 27곳이다. 지난해 외국계 로펌이 우리나라에서 낸 수익 규모는 약 15억2270만 달러(한화 2조267억 원) 규모에 달한다. 외국법자문사도 2018년 164명에서 지난해 207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분쟁을 겪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해외 로펌이 외국 현지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자문 계약 체결을 위해선 국내에 사무소를 두고 고객을 유치하는 편이 유리하다.

법률시장 개방 1단계에선 외국 로펌이 우리나라에 사무소를 설립할 수 있다. 국내 로펌과 업무를 제휴하거나, 우리나라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다. 2단계에선 국내법 사무와 외국법 사무가 혼재된 사건에 대해 국내 로펌과 해외 로펌이 사안별로 공동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 수익 분배도 허용된다. 합작 법인 설립은 3단계 개방부터다. 3단계 개방 국가는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캐나다, 콜롬비아, 영국, 베트남 등이다.

다만 유사한 합작법인 설립이 연쇄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가 요구하는 규제가 높은 수준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조인트벤처를 허용하더라도, 외국로펌의 지분은 최대 49%로 절반을 넘기지 못한다. 자문 외에 송무나 대정부기관 업무, 공증, 등기·등록업무, 가족법 관련 업무, 노무 및 지식재산권 업무는 다룰 수 없다. 이러한 제한에 대해서는 법조계 평가가 엇갈린다. 국내 법률시장 특성을 고려한 조치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규제가 너무 강해 실질적인 법률시장 개방 효과를 저해한다는 평가도 상존한다. 실제 2012년 국내 개방 전에 사무소 개설을 신청했던 영국의 클리포드 찬스(Clifford chance)는 변호사 수가 3400명에 달하는 대형 로펌이지만, 서울사무소 운영 9년만인 지난해 국내에서 철수했다. 역시 2012년 국내에 진출했던 미국계 로펌 심슨 대처(Simpson Thacher & Bartlett)도 2018년 국내 사무소를 닫았다. 해외 로펌의 경우 국내 서비스보다 우리 기업의 해외 법률사무 처리가 주된 관심사인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디엘에이파이퍼(DLA Piper)의 경우 한국계 변호사 5명을 고용해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활동 중이다. 법률전문가 4300명을 규모로 세계 40곳에 사무소를 둔 디엘에이파이퍼는 이원조 외국변호사가 대표를 맡고 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직업부 장관의 배우자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미국 법률전문지 ‘아메리칸 로이어’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세계 200대 로펌에 이름을 올린 국내로펌은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광장 등 3곳이다. 김앤장은 지난해 9억7309만 6000 달러(한화 약 1조2951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부동의 국내 1위를 기록했고 태평양 3억3688만8000 달러(약 4483억 원), 광장은 3억3016만2000 달러(약 4394억 원)로 비슷한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