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부동산 세대론

4·19세대부터 MZ세대까지

20·30세대는 언제나 주택시장 핵심

“MZ세대가 집값·트렌드 변화 핵심”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부동산 시장을 설명할 때 ‘세대론’은 막강합니다. 요즘 집값 하락 원인을 따지면서 ‘MZ세대’를 거론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1980년대 초~9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합니다. 2020년 이후 공격적으로 대출을 활용해 집을 샀다가 최근 이자 급등기를 맞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한 부동산 전문가는 “금융지식이 부족한 MZ세대가 문재인 정부 막바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빚을 내서 투자)’에 나서면서 수도권 외곽은 물론 지방의 중소형 아파트까지 폭등했다”며 “올 들어 이자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부담을 느낀 이들이 내놓는 급매물로 인해 집값은 폭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최근 하락 추세인 집값이 더 가파르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집값 폭락의 진앙지로 MZ세대를 지목한 겁니다.

실제 2021년 말 기준 20~30대가 지고 있는 대출은 504조원이라고 합니다. 전체 가계대출(1862조원)의 27%에 해당합니다. 단기간 너무 많이 늘었습니다. 3년만에 1.5배로 급등한 수준이라네요. 이중 대부분은 부동산 투자에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자상승기 당연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최근 ‘자고 나면 오르는 이자 감당이 안돼요’, ‘빚투 했다가 벼랑에 몰린 MZ세대’ 같은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집값 하락에 떠는 2030 …폭락의 주범 VS  합리적 투자 [부동산360]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 [연합]

▶억울한 ‘MZ세대’= MZ세대는 억울합니다. 특히 ‘금융지식 없이 묻지마 투자’, ‘게임하듯 부동산 쇼핑하는 MZ세대’같은 식으로 자신들을 철없고 책임감 없이 묘사하는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이 불쾌하다네요. 대출을 최대한 동원해 투자하는 걸 능력이라고 가르치던 사람들이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고 금방 태도를 바꾸는 게 좀 우스워 보입니다.

사실 MZ세대는 역대 어느 세대보다 경제와 투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대학 초기부터 주식을 시작하고 재테크 서적과 투자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보 접근성도 과거와 비교가 안됩니다. 최신 부동산 관련 모바일 앱을 통해 아파트 가격을 비교하고, 입주량, 교통여건, 개발호재, 인구흐름, 외지인 비율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투자를 결정합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서울 성북구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요즘 30대가 집을 사려고 올 땐, 이미 웬만한 정보는 검색을 통해 다 확인하고 와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실내를 보여주는 VR(가상현실) 서비스를 통해 이미 내부 구조까지 다 보고 오는 경우도 많답니다.

팟캐스트 ‘부린이라디오’를 2년간 진행하면서 최근 2030세대를 위한 부동산 재테크 저서 ‘부동산 투자를 잘한다는 것: 부린이를 위한 내 집 마련 실전 가이드’를 출간한 이승주(36) 씨는 “2030세대는 앞선 그 어느 세대 보다 부동산 정보 접근성이 뛰어나며,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깊게 확인 한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는 이점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2030세대 대부분이 첫 주택을 마련할 때 기본적으로 1~2%대 디딤돌대출, 보금자리대출을 고정금리로 받았고, 금융권 가이드라인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대출을 받았습니다. 금리가 올라도 대부분이 우려할 만큼 심각한 타격을 입진 않는다는 이야깁니다. 물론 일부 무리한 대출을 받은 사람은 있었겠지만, 그게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세대를 집값 하락 추세의 핵심 세력으로 묘사하는 지 이해할 수 없네요. 2030세대는 멍청하지 않아요. 대부분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합리적으로 투자했을 뿐입니다.”

▶‘과거에도 그랬다’…부동산 세대론 소사= 사실 집값을 이끄는 주체로 2030세대가 호명된 역사는 꽤 깁니다.

사실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핵심 소비 주체는 늘 2030세대였습니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을 성공으로 이끈 세대는 1940년대생 ‘4·19세대’입니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리를 잡던 60년대 후반은 우리나라는 제2차 경제개발계획이 제 궤도에 올랐던 시기입니다. 연간 두 자리 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1970년대 초반 시작한 강남 개발의 최대 수요자가 4·19세대였습니다. 당시 월 40만원 정도 월급을 받는 대기업 직원이나 중동 파견 근로자의 부인들이 강남 아파트를 가장 많이 샀다고 합니다.

1950년대생들은 1972년 유신헌법이 제정된 이후 20대를 맞아 ‘유신세대’라고 불립니다. 1980년대 중반 저유가·저금리·저환율의 ‘3저호황’을 누릴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당시 개발을 시작하던 과천 신도시와 개포, 목동, 상계 신시가지의 적극적인 매수자들이었습니다. 강남 아파트값이 뛰는 걸 목격했던 이들은 신시가지 주택 매수에 열을 올렸죠.

1960년대 태어난 386세대(이젠 50대 중반 이상이 됐네요)에겐 1990년 초부터 공급을 시작한 1기 신도시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고, 90년대 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당시 가장 큰 규모로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세대입니다. 당시 신도시 주변엔 대형 할인매장이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대형 할인마트는 이후 우리나라 상가시장의 지형도를 바꿨습니다. 이때는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한 부동산실명제를 통해 시장이 많이 투명해졌던 시기이기도 했죠. 민주화 움직임에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경제에 대한 기대가 커졌던 때죠.

우리나라 중산층 부동산 신화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대략 10년 주기로 신시가지나, 신도시에 대규모 주택공급이 이뤄졌고, 각 세대별로 이들 주택을 가장 적극적으로 매수했습니다. 이후 빠른 경제성장률과 함께 뛰는 집값은 이들을 중산층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이사를 몇 번 하니 제법 그럴 듯한 집을 갖게 됐고, 이사할 때마다 생긴 차익으로 모자란 자녀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베이비부머(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60년대 중반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 세대’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죠.

집값 하락에 떠는 2030 …폭락의 주범 VS  합리적 투자 [부동산360]
초고층 아파트 단지 앞을 한 청년이 걸어가고 있다. [헤럴드DB]

▶‘MZ세대’ 이전엔 ‘X세대’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한 1970년대생 부터는 공기가 조금 다릅니다. 이들은 ‘IMF세대’, 혹은 ‘X세대’라고도 불렸습니다. 역대 처음 사회 진출 시기 국가 부도사태를 맞은 이들은 집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비정규직이 급증하던 당시 20대에겐 새로운 호칭이 하나 더 생깁니다. ‘88만원 세대’입니다. 비정규직 평균 급여와 20대 평균 급여를 조합해 나온 금액으로 대표되는 세대라는 뜻이죠. 이때부터 자력으로 내집 마련이 어려운 시기라고 평가됩니다. 집값도 이미 너무 많이 오르기 했구요.

정부는 IMF외환위기 직후 침체된 주택시장을 회복하기 위해 각종 부동산 거래 규제를 완화합니다. 분양가상한제도 폐지했구요. 이는 2000년대 들어 ‘닷컴버블’로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부동산 시장을 다시 들썩이게 하는 배경이 됩니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시기는 집값이 역대급으로 폭등합니다. X세대 중 상당수는 대출을 끌어 파주 운정, 화성 동탄, 검단, 김포 한강 등 수도권 외곽 ‘2기신도시’에 신혼집을 마련하죠. 이때 강남에선 3.3㎡당 1000만원을 돌파하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등장합니다. 2000년 중반엔 ‘버블세븐’(강남구·서초구·송파구·목동·분당·평촌·용인)이 주택시장을 이끌었습니다. X세대 중에서도 버블세븐에 입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던 시기입니다.

X세대가 필사적으로 재테크 공부에 매진한 때가 이맘때 즈음입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탐독하면서, 대출을 활용한 ‘레버리지’(지렛대 효과:타인에게 빌린 돈을 지렛대로 삼아 투자)로 집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같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그런 상황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집값이 대폭락해야만 집을 살 여력이 되는 88만원세대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실제 집값 하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작해 2010년대 초반 2기신도시 입주가 본격화하면서 심화합니다. 당시에 집이 있지만 대출이 많아 은행 빚에 허덕인다는 의미에서 ‘하우스푸어’란 용어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무리해서 집을 산 X세대에겐 지옥과 같은 시기였습니다. 당시 서울 아파트값은 2013년까지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KB국민은행 기준으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8.67% 떨어졌는데, 단지별로는 30~40%씩 폭락하는 곳도 꽤 많았죠.

X세대 중 상당수는 월세 또는 전세 거주자가 많았습니다. 집값이 오르지 않자, 집주인이 늘어나는 이자비용을 세입자에게 전가해 세입자의 주거환경이 악화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렌트푸어’란 표현도 그때 등장했죠.

▶집값 하락 공포 큰 ‘MZ세대’= 최근 주택시장에서 MZ세대가 처한 현실은 X세대와 비슷합니다. 집값 상승기 끝자락에 대출을 적극 활용해 내 집 마련을 했다가 집값이 하락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차원에서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지금은 금리를 올리는 시점이라는 점입니다. 작년 7월 연 0.5%였던 금리가 10월 현재 3%까지 올랐습니다. 앞으로도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2008년 이후 집값 하락기엔 경기 침체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2008년 9월 5.25%였던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009년 1월 연 2%까지 떨어졌습니다.

MZ세대는 X세대와 달리 추가로 내야 하는 대출이자가 계속 늘어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집값에 대한 판단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MZ세대가 가장 적극적으로 내 집 마련을 한 시기는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2020년과 2021년입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주택을 산 사람은 총 250만여명인데 이중 MZ세대가 약 72만2000명이라고 합니다. 전체 구입자의 28.89%에 해당합니다. 이들의 주택 구입 비중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2019년 19만여명(27.24%)에서 2020년 29만여명(29.36%), 2021년 23만여명(30.1%)까지 늘었습니다.

집값이 정점에 있을 때 대출을 통해 많이 샀다는 건 시사점이 큽니다. 앞선 베이비부머세대들은 집을 사놓은 지 꽤 됐기 때문에 최근 집값 하락세가 큰 부담은 아닙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서만 전국 기준으로 38%, 수도권은 56.7%나 뛰었습니다. 서울은 62.2%나 올랐습니다. 올 6월부터 10월까지 0.98% 떨어졌다지만 지금까지 상승한 걸 고려하면 별로 하락했다고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죠.

반면 MZ세대 중 상당수는 집값 폭락 공포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집값 상승 기대감에 샀다가 금리인상이 본격화하고, 집값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값 하락에 떠는 2030 …폭락의 주범 VS  합리적 투자 [부동산360]
서울 강남구 대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남 아파트 일대. [연합]

▶심화하는 세대 갈등?= 여기서 세대갈등의 불씨가 자리합니다. 먼저 세대 내 갈등입니다. 무리하게 집을 산 MZ세대에게 집값은 절대 떨어지면 안되는 대상입니다. 이들은 기존 베이비부머와 입장을 같이 합니다. 거래가 실종된 현재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빨리 온갖 부동산 규제를 풀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반면 무주택 2030세대에게 현재 집은 반토막으로 떨어져야 넘볼 수 있는 대상입니다. 앞선 ‘88만원 세대’ 처지처럼 집값이 폭락하길 원하면서 부동산 관련 기사마다, ‘규제완화를 하면 절대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세대 간 갈등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주거 여건을 누리고 있는 베이비부머에게 MZ세대는 적대감을 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편으로 베이비부머에게 집은 노후 자금입니다. 과거처럼 자식에게 모두 물려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노후 빈곤을 막으려면 함부로 증여를 해주기 어렵습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겠죠.

정책당국에선 어떤 정책이 시장을 정상화하면서도 무주택 세대에게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제공할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일어나는 세대 교체를 ‘굿바이 부머, 굿모닝 MZ’로 표현하고 싶다. 베이비부머를 떠나고 MZ세대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다. 이들은 정원이 딸린 대저택보다 가사노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아파트를 선호한다. 도심 콘크리트에서 자라 더이상 자연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아파트를 머니게임하듯 투자한다. 향후 10~20년은 MZ세대가 이끌 것이다. 향후 주택시장은 재테크 지능이 뛰어난 MZ세대가 어떤 선택할 지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이 최근 출간한 저서 ‘부동산 트렌드 수업’에서 한 말입니다.

집값 하락에 떠는 2030 …폭락의 주범 VS  합리적 투자 [부동산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