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극체제 힘의 불균형 예측불가 속
경제·지정학적 위험 도사린 곳들
이란·영국 등 분리독립 문제 현안
터키는 이웃나라와 끊임없이 충돌
국제분쟁 저널리스트 팀 마샬 분석
발칸과 중동 지역 등 세계의 분쟁지역 30여 곳의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해온 국제 분쟁 전문 저널리스트 팀 마샬이 현재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안한 지역, 10곳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시즌2로 돌아왔다.
‘지리의 힘2’(원제:The power of Geography)는 전 세계 30개국에서 출간, 150만 부 이상 판매된 전작 ‘지리의 힘’ 이후 7년 만으로 후속편 격이다. 전작이 지정학적 거대 블록과 지역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책은 개별 지역의 문제를 보다 깊이있게 들여다봤다는 차이가 있다.
마샬은 지리·위치가 경제 전쟁을 비롯, 영유권 다툼, 민족주의 분쟁 등의 중심에 있다는 시각을 견지한다. 1999년 러시아의 코소보 침공 당시, 러시아의 세계무대 복귀를 현장에서 처음 보도한 이래 세계 곳곳의 분쟁 현장을 지켜본 마샬은 현재 세계가 다극체제로 전환, ‘힘의 균형’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경제적·지정학적 공룡들이 여전히 국제 정세를 부여잡고 뒤흔들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책에는 익히 알려진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지역 외에 우리가 지정학적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낯선 곳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 .
가령 호주의 경우, 거대한 땅과 풍부한 자원으로 ‘행운의 나라’ 라는 이미지와 달리 지역 분쟁시 봉쇄와 차단에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수출입 상품들이 북쪽 해협, 즉 말라카 해협, 순다 해협, 롬복 해협 등을 통해 드나드는데 이곳들이 봉쇄될 경우 순식간에 에너지 위기를 겪을 수 있다. 호주의 방위전략은 이 시나리오에 맞춰 있지만 비상시 큰 땅덩어리 전체를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막강한 해군력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동맹을 신중하게 고르는 외교전략을 구사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으로 힘이 넘어가자 영국에서 미국으로 갈아타 굳건한 동맹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호주는 최근 중국의 부상으로 힘든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란은 해안을 두른 끝없는 산맥과 사막, 습지란 지형지세로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쉽지 않은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안으로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로부터 지금까지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는 이란은 시아파 종주국 노릇을 하며 예멘과 레바논, 시리아 등의 내전에 개입하고 무장세력 헤즈볼라를 지원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유대인에 대한 병적인 증오를 부추기며 권력을 장악하는 이란식 ‘종교를 빙자한 폭력’은 수니파 아랍세계에 일종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우려를 나타낸다.
영국도 지리적 이점을 누려왔다. 대양으로의 진출이 쉬워 대영제국을 일구고 유럽 본토의 정치적 혼란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런 분리의 정서가 브렉시트로 나타났다고 본다. 그 결과, 이제 영국은 새로운 동맹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EU 바깥에서 파워 블록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이다. 스코틀랜드가 떠난다면 영국은 단일 국가일 때 누렸던 전략적 및 지정학적 이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다. 영국이 EU를 떠나는 것에 비견되지 않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사통팔달의 전략적 요충지 터키는 옛 영광을 찾으려는 신오스만주의쪽으로 기울고 있다. 시리아와 리비아 등 아랍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에도 자주 개입하면서 강대국들과 삐걱대고 있다. 특히 에도르안 정권이 들어서고 이슬람 이념에 뿌리를 둔 정당이 나라를 이끌면서 “민주주의 사회로 가려다 이슬람 사회로 방향을 튼”나라가 됐다는 평가다. EU가입 마저 멀어진 터키는 이웃나라들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외교적으로 고립돼가고 있다.
산악지형 때문에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가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스페인은 각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와 언어적 정체성을 지닌 바스크나 카탈루냐 지역 등의 분리 독립이 현안이다.
마샬은 사하라사막 아래 아프리카 중부 사이에 동서방향으로 길게 이어 사헬지대에도 우려의 눈길을 보낸다. 지난 몇 년 사이 380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떠났다. 오래된 지리적 문화적 분리, 사막화와 알카에다, ISS의 준동 등 2020년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폭력이 증가하는 곳이다. 사헬의 문제는 사헬로 그치지 않고 난민문제로 유럽을 긴장시키고 있다.
저자는 최근 우주개발 경쟁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각국이 국제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위험천만한 최첨단 무기들의 격전장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책에는 2009년 이란 대선 과정에서 군중 시위와 폭력 진압 사이에서 경찰의 곤봉에 머리를 맞을 뻔한 아찔한 순간 등 저자가 분쟁지역에서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책은 각 지역의 정치·경제·군사적 현안과 갈등 요인 뿐 아니라 역사와 사회 문화를 아우름으로써 분쟁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지리의 힘2/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