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값 1년 전보다 17.9% 상승
작년 8월 연간 상승률의 2배 수준
집값 급등에 주거 불안 호소 늘어
중위소득가구도 내 집 마련 포기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니는 김모 씨(36)는 결혼을 앞두고 올해 초 신혼집을 알아봤지만 집값이 너무 비싸 매매를 포기하고 혼자 살던 전셋집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전세계약을 연장한 2년간 종잣돈을 더 모아 집을 마련하겠다는 게 김씨 부부의 계획이었지만 최근 마음을 고쳐먹었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살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어서다. 그러나 8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해도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집은 별로 없었고 반년 새 더 줄어있었다. 출퇴근 1시간대 거리의 경기권 아파트도 예산은 빠듯했다.
김씨는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사기는 망했다)’이 내 얘기는 아닐 줄 알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서울 외곽의 작은 아파트 한 채 정도는 마련해 평범하게 살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김씨는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전세를 살지, 예산에 맞춰 경기 외곽지역으로 갈지 고민 중이다.
주택가격이 가파르게 뛰면서 주거 불안을 호소하는 계층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위 소득의 중산층 가구조차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며 주거 환경이 불안정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집값은 급등한 탓이다. 청약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고 정부가 대출을 죄면서 주거 사다리도 흔들리고 있다.
중산층까지 확대된 주거 불안의 출발은 집값이다. 11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1년 전보다 17.9% 올랐다. 작년 8월 연간 상승률(9.83%)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부동산 시장 버블기로 꼽히는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야말로 ‘폭등’이다.
실제 지난 1년간 집값 흐름은 기록의 연속이었다. 공급 부족, 과잉 유동성 등으로 패닉바잉(공황구매)이 늘면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 하반기에만 KB국민은행 집계 기준 10.19% 뛰었고, 올해는 소폭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란 듯이 깨고 오름폭을 좁히지 않았다. 최근 거래절벽 양상이 심해지고 있음에도 가격은 여전히 상승 기조다.
한국부동산원이 8월 한 달간 발표한 주간아파트동향을 살펴봐도 수도권 아파트값은 매주 역대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고 서울도 2018년 2월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집값이 많이 오르다 보니 대출을 받아서라도 살 만한 집은 크게 줄었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맬 각오를 했다고 해도 대출받기가 녹록지 않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등 대출 규제에 개인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도입된 상황에 최근 정부가 기준금리 인상과 대출 옥죄기에 나서면서 일부 은행에선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청약시장에서도 내 집 마련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은 114.1대 1에 달한다. 치열해지는 경쟁에 청약 최저가점도 서울 기준 평균 57점까지 치솟았다. 57점은 39세 가구주 4인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최고점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사전청약도 청약통장에 16년 3개월은 돈을 넣어야 당첨권에 드는 실정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3년 차부터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특히 새 임대차법 강행 이후 전셋값이 뛰면서 매매가도 폭등세를 보였다. 수요 억제 중심의 규제책만 마련한 영향도 컸다”며 “지금은 중산층도 도시에 살기 어려워졌다. 사회적 기회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자산 양극화, 계층 분화, 박탈감·분노 등 사회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