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이모티콘으로 10억 대박!”
한국인의 이모티콘 사랑은 특별하다. 소프트웨어회사 어도비(Adobe)에 따르면 한국인의 이모티콘 사용 빈도와 이해도는 세계 평균보다 10%가량 높다. 한국인들은 이모티콘이 사적 관계는 물론 직장 내 소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평가했다.
그 중심에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이 있다. 2011년 11월, 카카오 이모티콘이 출시된 이후 10년이 지났다. 6개로 시작했던 카카오 이모티콘은 9700개가 됐다.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담은 재치 있는 이모티콘들로 한국인의 메신저 대화는 더욱 풍부해졌다.
이모티콘이 한국인의 ‘진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억대’ 매출을 올린 ‘대박 작가’도 많아졌다.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에서 1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 이모티콘 시리즈만 73개에 달한다. 1억원 이상 매출을 달성한 이모티콘은 무려 1300여개다. 앱 스토어와 카카오의 수수료 등을 제하고 나면 수익의 30~35%가량이 작가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 나와 ‘캐릭터’사업, 실패 뒤 ‘10억’ 작가로
카카오에 따르면 10억원 이상 매출이 발생한 이모티콘 IP는 모찌, 세숑, 오니기리, 늬에시, 오구, 오버액션토끼, 에비츄, 요하, 나애미 등이다. 네이버의 전신 NHN을 박차고 나와 캐릭터사업을 창업한 30대부터, 도예가를 꿈꾸다 한 번에 ‘대박’을 터뜨린 20대까지 다양한 작가가 이모티콘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10억 이모티콘 작가’의 대표자는 백윤화(39) 펀피스튜디오 대표다. ‘모찌’와 ‘세숑’으로 2010년대 초반 카카오 이모티콘 ‘붐’을 이끌어냈다. 백 작가는 NHN 공채 1기로 입사해 9년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모티콘시장의 가능성을 본 뒤 2012년에 퇴사, 캐릭터회사 펀피스튜디오를 창업했다. 직후 내놓은 ‘조이’와 ‘푸푸’가 연이어 실패하면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고양이 캐릭터 ‘모찌’와 강아지 캐릭터 ‘세숑’으로 ‘대박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귀여운 아기 캐릭터 ‘요하’로 사랑받은 김재수 작가 또한 초창기 멤버다. e-러닝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하던 김 작가는 퇴직금으로 캐릭터회사 ‘아포이’를 차렸다. 부모의 반대로 못다 이룬 애니메이터의 꿈이 바탕이 됐다. 2012년 캐릭터 홍보 차원에서 카카오 이모티콘을 출시했다. 이후 육아일기와 스케치에 담아둔 딸아이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 ‘요하’가 주목을 받았다. ‘요하’는 딸, 손녀 같은 친근함을 강점으로 40대 이상 소비자로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 보는 ‘오리 너구리’, B급 감성 ‘내시’ 그린 20대 ‘10억’ 작가
카카오 이모티콘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4월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가 오픈하면서부터다. 온라인을 통해 카카오에 이모티콘을 제안하면 심사와 상품화 과정을 거쳐 이모티콘이 출시된다. 기존 작가뿐 아니라 신규 창작자, 일반인까지 누구나 쉽게 참여 가능하다. 매달 5000건이 넘는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독특한 이모티콘을 그리는 20대 ‘10억’ 작가도 대거 배출됐다. 문종범(29) 작가가 오리너구리 캐릭터 ‘오구’ 이모티콘을 출시했을 때 나이는 27세였다. 도예학과를 졸업한 뒤 예술가의 꿈을 꾸던 중 이모티콘시장에 대한 기사를 본 게 계기가 됐다. 특이한 동물에 대한 평소의 관심이 아이디어가 됐다. 문 작가는 문랩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최근까지 28개의 카카오 이모티콘을 출시했다.
‘B급 감성’ 강자 박철연(31) 작가 또한 20대에 주요 캐릭터 ‘늬에시’를 제작했다. 다채로운 표정의 ‘늬에시’ 시리즈는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8년 한 해에만 100만개 이상이 팔렸다. 박 작가는 외국계 주방용품회사에서 4년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실용성이 중요한 주방용품과 달리 자신만의 개성있는 아이디어를 손쉽게 상품화하는 이모티콘에 끌렸다. ‘늬에시’ 대박으로 회사를 그만둔 뒤 전업 작가로 전향했다. 이 밖에 ‘궁늬에’ ‘읽씹선비’ ‘노비’ ‘마님’ 등 개성 강한 이모티콘을 다수 출시했다.
낮아진 진입 문턱에 ‘부업’ 개념으로 이모티콘 작가에 도전하는 일반인도 많아졌다. 백윤화 펀피 대표는 “대단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시작하는 건 아니다”며 “아이디어를 곧바로 그려 제안하고 다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은 물론 수입이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