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지서 2배 차이…전세난 속 격차 벌리는 갱신·신규계약
‘반포리체’ 59㎡ 지난달 갱신 8억8000만원, 신규 17억원에 전세거래
집주인, 신규 계약선 “일단 가격 올리자”
세입자 위로금 요구·집주인 재임대 사례도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최근 아파트 단지 내 같은 면적에서 전셋값이 수억원 이상 차이 나는 ‘이중가격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존 세입자가 계약을 연장하면서 임대료 인상률 5%를 적용한 사례와 신규로 전세 계약을 맺은 사례의 차이가 뚜렷한 것이다. 그 격차가 2배까지 벌어지면서 극심한 전세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1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반포리체’ 59㎡(이하 전용면적), 7층 매물 2건은 지난달 각각 8억8000만원, 17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2년 전 같은 면적의 전세 계약이 8억~9억원대에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전자는 이와 비슷한 수준, 후자는 2배 가까이 뛴 가격에 계약된 것이다.
인근 ‘반포자이’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59㎡ 매물은 지난달 각각 13억5000만원, 8억925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194㎡는 지난 4월 39억원에 계약이 이뤄졌는데, 바로 다음 달 이보다 19억500만원 낮은 19억9500만원에 신고된 사례가 나왔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84㎡ 역시 지난달 신고된 전셋값의 최저가가 4억3050만원, 최고가가 9억원이었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99㎡는 이달 각각 7억9800만원, 14억50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이런 이중가격이 곳곳에서 형성되는 건 지난해 7월 도입된 새 임대차법과 전세매물 부족 현상의 영향이 크다. 임대차3법 중 하나인 전월세상한제는 기존 세입자가 계약을 연장할 때 임대료 인상률을 5% 이하로 제한한다. 집주인들은 한 번 체결한 전세 계약에 4년 간 묶이면서 임대료 상승도 제한받게 되자, 신규 전세 계약을 맺을 때 전셋값을 대폭 올려받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기존 전셋집에 눌러앉는 세입자가 늘어난 상황에서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반전세·월세 전환, 실거주 의무 강화, 청약 대기수요, 학군·이주수요 등에 따른 전세매물 품귀현상은 전셋값을 치솟게 만들고 있다.
최근 반포동 재건축 단지의 이주수요로 전셋값이 크게 뛴 서초구에선 이런 분위기가 뚜렷하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달 전용 198㎡ 매물이 34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1년도 안 돼서 가격이 8억원 뛴 것”이라며 “갱신계약을 한 사람도 안도할 수 없고 그 다음번 계약 때 전셋값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셋값이 수억원씩 뛰다 보니 기존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는 조건으로 위로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집주인도 처음에는 당황해 하지만,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 전세금을 올려받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적정 수준에 받아들인다는 게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 사이에서도 ‘2000만~3000만원 정도면 주고 말지’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 같다”며 “결국 이 비용은 새로운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라고 했다.
중개사들은 또 집주인이 “내가 직접 들어가 살겠다”고 하면서 기존 세입자를 내보낸 뒤, 나중에는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전셋값을 올려 재임대에 나선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이중가격을 통계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 동향은 신규 계약만 반영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일부 아파트는 신규보다 갱신계약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면서 “정확한 시장 현황을 반영하기 위해 연구 용역에 들어간 상태”라고 했다.
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