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 직장인 박모(30) 씨는 최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소름 돋는 경험을 했다. 여자친구에게 ‘주말에 가까운 산에 올라가자’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광고창에 등산화가 뜬 것이다. 박씨는 “친구에게 ‘이런 일을 겪었다’고 얘기했더니 스마트폰이 이용자의 음성을 인식해 맞춤 광고를 해준다고 하더라”며 “동의 없이 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무척 소름 돋고 불쾌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애플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 자사 기기 이용자들에게 광고주의 맞춤형 광고 제공 여부를 선택할 권한을 제공했다. 박씨의 사례처럼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새 개인정보가 수집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달 말 시행 이후 약 보름 동안 전 세계 애플 단말기 이용자 가운데 불과 10%만이 자신의 데이터를 수집해 ‘맞춤형 광고’를 받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조사 결과다.
10일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플러리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전 세계 애플 기기 사용자 530만명 가운데 11%만이 애플리케이션(앱)의 개인정보 추적 허용을 선택했다.
미국으로 국한하면 4%로, 불허를 택한 사용자(96%)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앞서 애플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앱 추적 투명성(ATT) 기능이 포함된 운영체제(OS) iOS 14.5를 발표했다.
앱 추적 투명성은 앱을 처음 실행할 때 해당 앱이 사용자의 이용 기록을 추적해도 될지를 반드시 묻도록 하는 기능을 골자로 한다. 새 iOS로 업데이트하면 IDFA(광고주용 식별자)에 접근하려는 앱을 실행할 때 팝업창을 통해 그 앱이 IDFA에 접근하게 허용해도 될지를 이용자가 승인하도록 한다.
IDFA는 아이폰·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마다 부여된 고유한 식별자(identifier)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광고주들은 이를 활용해 아이폰 이용자의 위치정보나 검색활동, 앱 이용 기록 등을 추적하고 맞춤형 광고를 보낸다. 박씨처럼 등산용품에 대해 언급만 해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광고창에 등산 관련용품이 뜨게 하는 것이다. 이에 그동안 사용자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수집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업계에선 이번 플러리애널리틱스의 조사 결과가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민감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이미 앞선 설문조사에서도 예상됐던 바다. 애플 전문매체 나인투파이브맥이 지난달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애플 단말기 이용자의 78.2%가 모든 앱의 데이터 추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좋아하고 신뢰하는 앱의 추적을 허용하고 나머지 앱은 금지할 것이라는 응답자도 18.9%에 달했다. 반면 모든 앱의 추적을 허용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광고주들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광고 기반 무료 앱에 의존해온 중소 개발자들이 더는 무료로 앱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무료앱 대신 유료앱으로 전환하는 곳이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