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6600장 기록 검토후 수사 지휘
檢 “기록은 검찰청에 두는게 불문율”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6600페이지에 달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의혹 사건 기록을 직접 검토한 것을 놓고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적 사건을 수사할 경우 국무위원인 법무부 장관이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기록을 고스란히 넘겨 받은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감찰관실은 대검찰청 감찰부와 합동 감찰을 준비 중이다.
박 장관은 합동감찰 지시에 앞서 모해위증 의혹 사건 관련자들의 기소 여부를 재심의하라는 수사지휘 과정에서 6600장 분량의 관련 기록을 모두 살폈다.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은 지난 17일 법무부 브리핑 직후 취재진에게 “(박 장관이)개인적으로 기록이 6600페이지 정도 되는데, 그것도 개인적으로 다 보셨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관이 수사와 관련된 기록을 검찰 외부로 반출해 직접 검토한 게 부적절하다는 반응이다.
차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지휘도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하게 돼 있는 건데, 사건 관련 기록이 검찰청 밖으로 나오는 거 자체가 안 맞는 것”이라며 “보고로만 이해를 못 하고 기록을 가져다 본다는 건 결국 못 믿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한 검찰 간부도 “기록은 항상 검찰청에 둔다는 것이 옛날부터 불문율이었다”며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장관이 마음만 먹으면 다른 수사 기록도 다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 관련은 감찰 기록이니까 가져갔다 해도 감찰지휘만이 아닌 수사지휘에도 사용했다”며 “감찰로 얻은 정보를 수사에 활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장관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정치인 출신이란 점도 기록을 열람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고검장 출신 한 변호사는 “국무위원이란 게 대통령의 참모이고 각료인데, 정치인 출신 각료인 장관이 기록을 직접 본다는 건 검찰 수사의 독립성이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나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의 기록 열람은 법적인 문제로도 번졌다. 박 장관은 수사지휘 직후 한 시민단체로부터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해당 단체는 박 장관이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감방 동료 김모 씨가 한 전 대표를 서울중앙지검 11층 복도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것’과 ‘접견 당시 쪽지’ 등의 내용을 수사지휘서에 언급한 것이 피의사실 공표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관련 기록 열람을 통해 알게 된 정보가 수사지휘 과정에서 노출된 사례다.
이와 관련 법무부 관계자는 “감찰관실에서 공문을 대검에 보냈을 것이고, 감찰관실에서 볼 수 있는 건 장관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