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류씨 미암종가, 양성평등 선구적 가문
류희춘 인종대왕 교육, 명종에겐 시무십책
부인 송덕봉 능력인정…부부문학 보물 지정
남편사랑, 冊선비·군자불기 충언 詩로 표현
명의 허준과 각별한 인연, 내의원 발탁
부인들 가문 따라 세거지 변경 17대 번성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선산류씨 문절공파 미암종가의 미암 류희춘(1513~1577)은 왕의 스승이자, 국정의 향도자이다.
인종(당시 세자)을 가르치고, 명종에게 ‘시무십책’을 올린 정치학의 대가이다. 소윤-대윤싸움에 연루돼 19년 유배생활을 했고, 이후 전라감사·대사헌·부제학 등 요직을 거쳤다.
류희춘과 홍주송씨 청심헌종가의 딸 송덕봉(1521~1578) 간의 부부 금슬은 지고지순한 사랑 뿐 만 아니라 양성평등의 철학 위에 상호 내조와 외조를 해주며 이상적인 부부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큰 울림을 준다.
이는 여성의 능력 또한 높이 산 선산류씨 미암종가의 가풍이 아니고서는 당시 시대상황에 비춰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가풍이다. 시댁과 남편의 지원 속에, 송덕봉은 조선의 여풍당당 여성지식인의 표상이 된다.
머지 않아 만날텐데, 류희춘은 전라감사 부임길에 시를 보낸다. 雪下風增冷(설하풍증냉:눈 내리고 바람 더욱 차가우니)/思君坐冷房(사군좌냉방:찬방에 있을 당신 생각나는구려)/此醪雖品下(차요유품하:이 막걸리가 비록 하품일지라도)/亦足煖寒腸(역족온난장:차가운 속 데우기엔 족할것이요)
이에 송덕봉은 (前略:전략) ‘국화꽃잎에 눈발 날려도, 찬방에서 따스한 술 받으니, 속이 다 채워졌어요’라는 답시를 보낸다. 요즘 젊은이들 까지 흐뭇하게 볼 풍경이다. ‘조선의 닭살’이라는 애교섞인 촌평을 섞어가며 말이다.
송덕봉은 또 ‘(전략)遊庭見月待還家(유정견월대환가:뜰에서 달을 보며 오시기만 기다립니다)’라는 남편 건강 걱정과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전략)三從義重一身輕(삼종의중일신경:삼종의 도는 무거워도 내 몸은 가볍네)’라면서 모시던 시어머니 사후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함경도 종성까지 삼천리길을 가면서 변치않은 아내의 사랑을 시에 담았다.
학문만을 즐기며 책 속에 갇힌 남편을 포함해 군자들의 고고한 태도를 칠언절구로 시작(詩作)하기도 했다. ‘(전략)君何偏癖簡編間(군하편벽간편간:군자라는 분들이 어찌하여 서책 사이에서 편벽된 생각만 하시는지’라고. 시로 전해진 메시지이지만, 백면서생들의 책상공론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군자불기(君子不器)의 뜻을 일깨우는 당찬 일갈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산류씨 10세손 류희춘은 이조참판을 지낸 류계린의 아들로, 어머니 탐진최씨의 본관 근처인 해남에서 태어나 담양 홍주송씨와의 혼맥으로 담양 대덕에 문절공파 종가를 열었다.
남도 종가에선 선비가 부인가문을 따라 새로운 세거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류계린-희춘 부자, 홍주송씨 송평이 모두 그랬다. 양산보는 처가인 면앙정 송순의 지원을 받았고, 송강 정철은 처가 광산김씨의 의로운 가풍을 지탱하는데 힘을 보탰다. 모두 여성 존중, 양성평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부부간 시문교환을 포함해 다양한 글들이 수록된 미암일기(보물 260호)는 중세의 정치·경제·사회·풍속을 엿볼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더 광대한 문집 미암집은 류희춘의 10대손 정식이 편찬하고 ‘포스트 기대승’ 중 한 명인 기정진이 교정했다.
류희춘은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도록 인공연못을 만들어 마을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후손들은 1959년 인공호수 안에 인공섬을 만들어 문화 유산을 보관하는 모현관을 지었다. 백성을 위한 인공호수와 온고지신 퓨전오두막의 조화가 운치있다.
선산류씨는 앞서 고려사람 류창의 자손이 경북 구미 선산을 식읍으로 받아 번창했고, 남도에 터잡은 것은 류계린(1478~1528)이 스승인 최부(1454~1504, 호는 금남, 표해록 저자)의 딸과 결혼하면서부터다. 김종직으로부터 배우고, 조광조와 동학한 김굉필도 류계린의 또다른 스승이다.
류계린은 기상(氣像)·질욕(窒慾)·사친(事親)·제가(齊家)·수신(守身)·처사(處事)·지인(知人)·접물(接物)·계사회천(戒仕誨遷)·문학(文學) 등 ‘십훈(十訓)’을 가훈 삼았으며, 명의 허준(1539~1615)을 발탁해 내의로 추천하고 동의보감 저술을 위한 서책 등을 지원한 후원자로도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