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영 건국대 교수·황세진 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 주장
“가격 거품 징후 찾기 어려워…”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정부가 투기를 억제하고자 내놓은 강력한 규제와 세제들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스무 차례 넘게 처방을 내놨는데도 집값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정부가 진단 자체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3일 한국경제학회에 따르면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와 황세진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근 ‘주택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정부의 정책 수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행 주택정책의 기조는 ‘박정희 패러다임(체계)’과 ‘전두환 패러다임’의 두 축으로 이뤄졌다”며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박정희 패러다임은 투기 억제를 통한 부동산 가격 안정, 전두환 패러다임은 대단위 택지개발을 통한 주택의 대량 생산을 뜻한다.
즉 투기를 잡기 위해 내놓은 규제를 줄이고 계층별로 지원하되, 신도시 같은 대단위 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정희 패러다임의 문제의식은 투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너무 높아졌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예외적인 시기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격 거품의 징후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택가격은 대체로 주택의 가치를 반영해왔고, 시장은 정상적으로 작동한 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다른 경제지표나 외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집값이 너무 높다는 주장은 통계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주택가격 통계가 시작된 1986년 1월 대비 올해 9월 전국 KB주택매매가격지수는 203% 상승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235% 올랐다. 집값 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못 미치는 것이다.
이들은 “서울·강남·아파트로 좁혀 보면 물가보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높지만, 그래도 근로자 가계소득 증가율보다는 여전히 낮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도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50년 넘게 이어진 투기 억제 정책의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원인은 억제해야 할 투기가 무엇인지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자본 이득을 겨냥한 부동산의 취득, 보유, 처분을 투기라고 한다면 모든 국민의 부동산 활동이 투기”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가 꼽는 대표적인 투기 세력인 다주택자에 대해서도 정부의 주택 공급 역할을 대신하고, 거래를 통해 시장 자율 조정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들은 “투기 억제 대책들은 빠짐없이 조세 측면의 제재를 포함한다”며 “하지만 시중 유동성이나 이자율, 지역별 수급, 소비자 선호의 변화 같은 요인들을 그대로 두고 세금만으로 주택가격을 잡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국의 주택정책이 ‘교과서’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정책의 초점은 내집 마련이 불가능한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으로, 이 밖에 중산층은 저렴한 분양 주택을 공급하되 금융이나 세제 혜택으로 지원하고 고소득층은 지원이 불필요하지만 간섭하지도 않는 것이다.
끝으로 “특히, 이번 정부에서 투기 억제를 위해 도입한 수많은 과도한 규제와 세제를 정상화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h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