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교역국 입국절차 간소화 설득
언택트 수출 상담회 개최 등도 지원
최근엔 항공·배편 부족 해결 동분서주
중견·중기 보호무역 피해 법률컨설팅도
인도·아세안 등 수입규제 움직임 유의
바이든 정책 선제대응 세미나도 준비
“요즘 하루 일과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11개 해외 지역본부에서 보내온 해외 각국 통상 동향과 13개 국내 지역본부에서 보내온 회원사들 현황 보고서를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글자 하나 숫자 하나에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가는 회원사들의 분투가 느껴져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후엔 직접 회원사 대표분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만나뵙고 협회가 도울 일이 없나 여쭙습니다.”
한진현(61)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에게 올해는 유독 바쁜 한해다. 연초부터 전세계의 정치·경제·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으로부터 우리 수출기업을 보호하는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진두지휘 아래 무역협회 임직원은 코로나19와 보호무역주의 속 수출 기업의 애로 사항을 해결하는 데 분투를 다하고 있다.
▶최악의 교역환경, K-무역은 달랐다=한 부회장은 “암울한 교역 환경 속에도 한국은 세심한 방역 조치를 통해 경제성장과 수출 증가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수출은 지난 1~8월 전년 대비 10.6% 감소해 주요 수출국 중 중국(-2.3%) 다음으로 양호한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일본(-14.6%)이나 미국(-16.1%), 영국(-16.8%) 등 대부분 선진국들의 수출 실적을 능가했다.
한 부회장은 “3분기 들면서 수출이 전년대비 개선되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 9월에는 월별 수출액이 7개월 만에 전년 대비 7.6% 증가하는 데 성공했고 지난달에는 일평균 수출액도 9개월 만에 5.6% 반등했다.
한 부회장은 “내년 하반기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고 글로벌 경제 활동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 수출 회복세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연초부터 지난달까지 감소한 수출 금액 중 약 82%는 가격과 경기에 민감한 석유제품·석유화학·자동차·차부품 등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반대로 회복 국면에서는 수출액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부회장은 “이미 반도체와 가전은 지난 7월부터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친환경차와 2차전지도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부상한 점은 반가운 점”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언택트 소비가 늘고 건강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늘면서 컴퓨터와 바이오헬스 제품, 화장품 등의 수출도 크게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수출의 반전드라마에 대해 한 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이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위기 속 기회를 포착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사람·물자 ‘묶인 발’풀었다=“코로나19 초기 방역 물품 부족 등을 호소하던 수출기업은 이제 각국의 이동 제한 조치를 해결해 달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고 있고 협회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고 한 부회장은 전했다.
각국 정부가 외국인의 방문을 원천 차단하거나 2주 이상의 격리를 요구하면서 국경을 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자사 물건을 하나라도 더 해외에 팔려면 해외 바이어를 만나서 제품의 우수성을 알려야 하는데 그 길이 원천 차단된 셈이다.
또한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릴 예정이던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전격 취소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 전시회가 대부분 취소된 것도 수출 기업으로선 위기다.
한 부회장은 “그동안 전시화와 상담회 등 대면 해외 마케팅을 통해 신제품을 홍보하고 신규 거래선을 확보해 오던 중소기업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에 무역협회는 외교부와 산업자원통상부 등 정부 부처와 손잡고 소화(패스트트랙) 조치를 취하도록 설득했다.
동시에 시공간을 뛰어넘는 언택트 수출 상담회를 개최하는 등 지원책도 마련했다. 무협 본부와 지역본부가 마련한 수출 상담회를 통해 해외 바이어와 상담을 진행한 기업은 3000곳에 달한다.
최근에는 중국발 물동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미국 시장에 물건을 보내려던 우리 기업들이 항공기나 배를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 부회장은 “수출 위기 상황에서 한 곳의 거래처도 아까운 판국에 배가 없어 납기를 못 맞추는 건 기업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회원사들의 급박한 상황을 일일이 확인한 한 부회장은 관계 부처와 관련 기업들을 찾아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회원사들의 절박함을 항공사와 해운업계에 들려주니 그분들도 안타까워하며 충분한 지원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내 최대 원양 국적선사인 HMM은 오는 2월 말까지 매달 미주항로에 임시편을 투입할 예정이다.
▶보호무역주의 극복 도우미 자처=한 부회장은 “외국에서 부당한 보호무역 조치로 피해를 입는 수출 기업들을 돕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해외 법률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무협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을 법무법인 세종과 회계법인 삼정KPMG과 연결해 무료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해 62건, 올해에는 11월까지 26건의 컨설팅이 진행됐다.
한 부회장은 “대기업이라면 사내 법무팀도 잘 갖춰져 있고 대형 로펌으로부터 자문을 구할 수 있지만 중소·중견기업들은 나라마다 다른 법과 무역 제도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수의 로펌과 회계법인이 가진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좀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꼼꼼히 대처할 수 있어 회원사들이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무협의 해외 법률 컨설팅을 이용하려는 기업들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당긴 보호무역주의 불씨가 지난해부터 인도 등 신흥국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며 각종 생산시설을 국내에 유치하려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과 정부 조달시 국내산 제품 구매를 의무화하는 ‘바이로컬(Buy Local)’ 정책을 그 예로 들었다.
한 부회장은 수출기업들에게 “인도와 아세안 등의 수입규제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인도의 경우 코로나19 이전부터 무역구제법을 개정하고 지난해부터 반덤핑 관세와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조치를 공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까지 인도가 새로 개시한 수입규제 조사는 5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건)의 3배에 이른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보다 강화될 미국의 ‘대중국 강경책’과 ‘보호무역주의’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대응해야 한다는 게 한 부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바이든 당선인의 경제 공약에 포함된 미국산 우선 구매, 국내 산업 보조금 지급, 외국 기업의 정부 조달 금지 정책은 우리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2025년까지 도입될 ‘탄소조정세’ 등 친환경 정책 추진 방향도 예의 주시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협은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통상정책과 규제 변화를 주시하며 우리 기업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보고서를 적시에 제공하고 세미나 등도 열 계획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원호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