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하다해서 통역 없이 외국인을 조사한 것은 인권침해라고 보고, 이에 대한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한국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국인을 신문하는 경우에도 통역의 제공 여부, 신뢰관계인의 참여 여부, 요청사항 등에 대해 확인하고, 그에 따른 편의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인권위는 또 당사자가 직접 읽고 작성해야 하는 미란다원칙 고지 확인서·임의동행 확인서와 우리나라 형사절차에 대한 안내서 등의 경우 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자료를 마련하고, 일선 파출소 및 지구대에서 적극 활용토록 할 것도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모로코 국적 피해자의 아내인 진정인 A 씨는 피해자가 피츨소와 경찰서에서 통역없이 조사를 받았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A 씨의 진정에 따르면 지난 3월 피해자는 한 아파트 노상에서 이삿짐 사다리차 일을 하던 중에 처음 보는 행인이 다가와 욕설을 하며 사진을 촬영했다. 이에 피해자는 행인의 휴대폰 카메라 뒷부분을 가리며 사진 촬영을 막았으며, 이후 행위에 위협을 느껴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관들이 피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으며 이과정에서 파출소와 경찰서에서 통역 없이 조사를 받았다고 A 씨는 주장했다. 이에 해당 파출소 소속 경찰은 통역 등의 제공과 관련해서 당시 피해자와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었고 피해자 또한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해서 통역의 제공이나 신뢰관계인의 참여 없이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피해자는 한국에서 8년 정도 거주하여 한글을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으나 어려운 어휘를 쓰거나 길게 말하는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피해자가 현행범·피의자 등과 같은 법률용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며, 당시 파출소 폐쇄회로(CC)TV 영상에 따르면 경찰관들과 피해자가 손동작을 하면서 대화하는 하는 모습이 수차례 확인되는 등 한국어만으로 의사소통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결과 확인됐다.
파출소 소속 경찰은 행인이 피해자를 가리키며 피해자가 욕을 하면서 가슴부위를 밀치는 폭행을 하였다며 처벌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인권위 조사에서 밝힌 설명에 따르면 피해자는 상대방을 밀치기는 했으나 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경찰관들은 밀친 것도 폭행죄에 해당함을 설명하고 피해자를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하였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설령 피해자가 상대방을 밀친 것을 현장에서 인정하였다 하더라도 출동 당시 피해자가 이삿짐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고 신분증을 제시하여 신원 확인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던 점, ▷체포 당시 피해자의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염려가 상당했거나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볼 만한 내용이 없는 점, ▷상대방의 112 신고내용(이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비교적 경미한 사안이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추후에 출석을 요청하거나 자진출석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조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인권위는 경찰관들이 현장 도착 후 10여분 만에 상대방에 대해서는 자진출석하도록 안내하고 외국 국적의 피해자에 대해서만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