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들 하자보수 나몰라라

보증금 인상-수리 관행에 제동

퇴거 확실 세입자도 수리 안해

법 시행전 경고 ‘質하락’ 현실화

자율조정 사라지고 분쟁만 남아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헤럴드경제DB]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헤럴드경제DB]

“원래는 화장실 하자보수하고 보증금을 지금보다 몇 천만원은 더 올리려고 했는데, 계약갱신청구하셔서 몇 만원 밖에 못 올리니까 (수리)못 해드릴거 같아요.”

경기도 분당에 사는 주부 A씨는 최근 21년된 중소형 아파트 반전세계약을 갱신하면서 집주인으로부터 이같은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보증금 2억원에 월 70만원으로 2년 임차 계약을 맺었는데 이번 연말 기간 만료를 앞두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인상률 5% 상한에 따라 월세만 5만원 더 올렸다. 최근 집값이 많이 올라서 재계약 할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많이 올릴까봐 걱정했는데, 5% 때문에 부담이 줄어든 건 일단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데서 나타났다. 지난 6월 A씨의 윗집 화장실에서 물이 새자 집주인은 급한 공사만 해주고, 전체적인 하자보수는 견적을 받아본 후 나중에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된 공사는 계속 미루더니 이번에 아예 수리를 못해주겠다고 통보했다. 임대차법 시행으로 집주인 입장에서 목돈을 들여 집 수리를 할 경제적인 이득이 생기지 않게 되자 거절한 것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원래 집주인들은 세입자 바뀔 때 보증금 1000만원 단위로 올려서 그 돈으로 수리를 해주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집주인이 못해주겠다고 하자 공인중개사가 ‘아주머니 남편분이 직접 하시면 되겠다’고 해 황당했다”며 “이대로 쓰기에는 문제가 많은데, 2년 뒤엔 무조건 나가야하는 판에 제 돈을 들여 수리하기도 아깝다”고 말했다. 집주인과 세입자 누구도 집에 큰 돈을 들여 개선할 유인이 사라져버린 셈이다.

임대차법 도입때부터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임대주택의 주택 질 하락이란 효과가 현실화된 셈이다.

반면, 실거주 목적으로 세입자가 있는 집을 산 매수인들은 혹시라도 세입자가 마음을 바꿔 계약갱신청구권을 쓸까봐 각종 수리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도 하다. 30대 직장인 B씨는 지난 6월 전세기간이 1년 여 남은 서울 구로구 소형 아파트를 매수했다. 구두로만 세입자가 내년 6월에 퇴거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등기를 친 상태다. 당시엔 계약서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명시하는 항목이 없었다.

B씨는 법 시행 이후부터 세입자의 각종 하자보수 요구에 난감한 처지라고 털어놨다. 그는 “인터폰 수화기 음량이 작다고 교체해달라고 하고, 집 장판이 들뜬다고 새로 해달라고 하고 당장 급박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면서 “아직 7개월 가량 계약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마냥 거절했다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요구하거나 퇴거 위로금을 달라고 할까봐 겁나서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업계에서는 임대차법 시행 이후, 시장에 맡겼을때 자율적으로 조정됐던 일이 더 인색해지고 까다로운 일이 되어버렸다고 전한다.

그런데 정부는 갈등상황에는 직접 소송을 통해 해소하라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분쟁 조정신청은 매달 증가하는 추세다. 7월 115건, 8월 131건에서 9월 149건, 10월 141건으로 늘어났다. 사건 유형별로는 △임차주택·보증금 반환, △임대차 계약 갱신 및 종료, △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순으로 많았다.

이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