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3대 산업 디자이너 론 아라드 기조연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재미·흥미’ 중요
당연한 것은 없다…‘만약’과 ‘무엇’을 활용
매력적이고 기분좋은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
미래는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
거꾸로 뒤집어진 건축물, 바퀴가 없는 자전거, 팔걸이가 없는 의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디자인 공식이 무너졌다. 그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이걸 한다면’, ‘만약 내가 이걸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호기심은 새로운 세상을 ‘디자인’할 수 있는 힘이다. “모든 것은 호기심으로부터, ‘무엇’과 ‘만약’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프레스 플라워 쿠바(2018, 론 아라드)’ 시리즈의 새빨간 메르세데스가 전시된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 살바도르 달리의 멋진 수염이 그려진 마스크를 쓴 론 아라드(Ron Arad)가 등장했다. 지난 4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를 위한 코로나19 기금 모금 컬렉션의 일환으로 그가 제작한 마스크다. 론 아라드는 8시간의 시차를 뛰어넘어 ‘헤럴드디자인포럼2020’의 기조 연설자로 1000여명의 관객과 화상으로 만났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올해 10주년이 된 ‘헤럴드디자인포럼 2020’은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크로마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론 아라드는 열 살 ‘헤럴드디자인포럼’에서 ‘창조적 디자인: 무엇일지와 만약에’를 주제로 그의 디자인 철학을 들려줬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한 론 아라드는 제품, 건축, 인테리어 등 모든 영역의 디자인에서 명성을 높인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다. 그의 디자인은 일상에 안착하면서도 독창성을 잃지 않는다.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태어난 창조물들은 삭막한 일상을 위트 넘치게 바꾼다. 이날 포럼에서 론 아라드는 “내게 있어 ‘디자인을 한다’는 건 내가 디자인하기 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자, 재미와 흥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매니페스토(Manifesto)를 좋아하지 않아요. 영국왕립미술학교(로열 컬리지 아트·Royal College Art)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슈드(SHOULD)’라는 말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해야만 해’, ‘어떤 것은 어때야만 해’와 같은 말이죠. ‘좋은 디자인이 좋은 비즈니스다’, ‘기능은 형태를 따라간다’ 이런 말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론 아라드가 바라보는 세상은 둘로 나뉜다. 오스카 와일드가 “세상엔 매력적인 사람들과 지루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 것처럼, 그는 “예술과 사물을 이러한 방식으로 본다”고 했다. ‘재미있고, 매력적이고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과 ‘재미없고 지루한 것들’이다.
론 아라드 디자인의 본질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일상의 전복과 새로움의 창조로 이어진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디자인이 태어나는 방식이다. 곧게 쭉 뻗은 건물 대신 빙산처럼 마름모꼴의 건축물, 움푹 팬 탁구대는 이를 바탕으로 했다.
“만약과 무엇을 활용하는 거예요. ‘만약 탁구대가 평평하지 않고, 쑥 들어간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탁구대가 반사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만들어진 탁구대가 전시되자 ‘멋진 조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더니, 여기에서 탁구를 쳐야 될 것 같다는 반응이 오더라고요. 탁구대를 보고 운동기구로 인식하기 전에 조각을 떠올렸어요. 이게 바로 디자인이 무엇이고, 예술이 무엇인지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론 아라드의 디자인엔 새로움의 미학과 즐거움이 담긴다. 굳이 ‘트렌드’를 따르지도 않는다. 그의 디자인은 이미 세상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포럼에서 그는 미래의 론 아라드를 꿈꾸는 세대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삼나무를 파내 만든 의자에 윌리엄 모리스의 말을 새긴 적이 있어요.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집안에 두지 마라.’ 하지만 당신이 좋아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입니다. 세상은 변할 것입니다. 이미 변하고 있고요. 우리가 예측한 대로 (미래가) 흘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능력과 창의성을 남을 돕기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