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주제발표

폭력적 세계화·국수주의·지역주의에 저항

‘세계적 대화(몽티알리테)’에 기여하려 노력

실내 탈피 찾아가는 전시로 예술체험 확산

[헤럴드디자인포럼 2020] “세상은 분리가 아닌 ‘연결’이 필요하다”
세계적 명성의 큐레이터이자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 관장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강연하고 있다.박해묵 기자

“세상에는 분리가 아닌 ‘함께함’이 필요하다. 의심이 아닌 사랑이, 고립이 아닌 공동의 미래가 필요하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서펜타인갤러리 관장은 22일 헤럴드디자인포럼에서 작가 에텔 아드난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말했다. 예술에 있어 ‘연결’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스 관장은 ▷기술과 예술의 연결 ▷문화분야 간 연결 ▷관객과 전시와의 연결이라는 세가지 주제로 이를 설명했다.

그는 예술이 환경오염 등과 같은 전인류적 위기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기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제이콥 스틴슨 작가의 카타르시스라는 작품이 대표적인 예시다. 해당 작품은 3D 텍스처로 인간의 방해없이 수백년에 걸쳐 형성될 숲과 가상생태계를 보여준다.

한스 관장은 “디지털 기술로 자연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생태적 미래에 대한 새로운 얘기를 창조했다”며 “관객에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자연환경에 대해 천천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했다.

문화분야 간 연결은 지식융합적 측면에서 강조됐다. ‘커넥트, BTS(CONNECT, BTS)’ 프로젝트는 현대미술 관객과 ‘케이팝(K-POP)’ 관객과의 교류다. 사실상 만날 기회가 없는 두 분야의 지식장벽을 넘어 서로 다른 세계를 한곳에 모은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BTS와 후속으로 작업한 ‘두 잇(do it)’ 프로젝트의 작품 설명서에도 나타난다. BTS는 프로젝트에서 “점과 점을 연결합니다. 선을 잇고, 면을 그립니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너’와 ‘나’는 ‘우리’가 됩니다. 우리의 미래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입니다”라고 했다.

예술 전시가 미술관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야 한다는 충고도 이어졌다. 미래의 전시는 관객에게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스 관장은 “몇년 전 택시기사가 자신의 딸이 야외 파빌리온 전시를 보고 건축가의 꿈을 꾸게 됐다며 고맙다고 했다”며 “실내 전시에만 머물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전시는 다양한 코드와 용도로 해석된다”며 “때문에 예술을 경험할 수 없는 사람도 경험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파빌리온 전시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 사람도 있고, 기술적 발전을 느끼는 이들도 있으며, 꿈을 찾는데 사용하는 관객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실내전시가 아닌 모든 관객이 쉽게 볼 수 있는 찾아가는 전시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측면에서 구정아 작가의 ‘스케이트공원’은 미래 전시의 예시로 꼽혔다. 스케이트공원은 형광물질로 제작돼 낮에는 빛을 모으고 밤에는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실제 공원이다. 현대예술 관람객에겐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전시물이지만, 스케이트보더들이 직접 스케이트를 타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한스 관장이 ‘연결’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철학자 에두아르 글리상의 ‘세계적 대화(몽티알리테)’라는 개념을 알게되면서다. 몽티알리테는 기술발전이 주도하는 극단적인 세계화는 폭력적인 세계화로 지구와 환경, 종의 종말, 언어와 문화의 손실을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화가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그는 “매일 글리상의 책을 읽는 일종의 의식을 한다”며 “극단적인 세계화는 새로운 지역주의, 새로운 국수주의, 연대의 결여를 만들 것이고 우린 이것에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글리상이 말한 몽티알리테란 세계적인 대화가 필요하고, 나도 몽티알리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홍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