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가능한 매물 몸값 높아져
동일 단지·평형서 2~3억원 차이
새 임대차법에 전입의무 영향 등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 예비 신랑·신부인 직장인 박 모(36)씨와 이 모 (35)씨는 ‘영끌’을 통해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전용 59㎡를 9억원에 매매하기로 했다. 3개월 전 실거래 된 가격보다 1억2000만원 더 비싼 가격이지만, 이 단지에서 유일하게 입주 가능한 매물이어서다. 박 씨는 “호가가 8억원대인 전세 낀 매물도 있지만 내년에 당장 입주해야 하는 데다 세입자의 권리가 강화된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집을 살 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입주 가능’ 매물과 ‘전세 낀’ 매물의 호가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가능해지면서 매수자들이 전세 낀 매물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동일 단지 내에서 신고가와 급매가가 동시 다발적으로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이하 전용면적) 아파트에선 호가 15억5000만원의 매물이 나왔다. 현재 단지 내 동일 면적의 호가가 17억3000만원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보다 1억8000만원 저렴한 매물이다. 지난 7월 실거래 된 가격 15억8000만원과 비교해도 3000만원 낮다.
아현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계약 종료가 예정된 전세를 안고 사야 하는 ‘사정 있는’ 매물”이라며 “집주인이 거주하거나 즉시 입주 가능한 매물은 호가가 17억원대에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 홍파동 경희궁자이2단지, 같은 동에서 나온 84㎡ 매물 2건도 호가 차이가 3억6000만원까지 벌어졌다. 호가는 전세 낀 매물이 16억4000만원, 입주 가능한 매물이 20억원이다. 층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16억4000만원은 시세(17억5000만~19억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의 평가다.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에서도 전세 낀 59㎡ 매물이 급매가인 12억원에 나왔다. 입주 가능한 매물의 호가가 14억원 이상인 것과 차이가 난다. 일대 중개업소 관계자는 “실수요자들은 바로 입주할 수 있는 매물이 필요하고, 매입 후 전세를 놓으려는 매수자 역시 기존 세입자보다는 다른 세입자를 들일 수 있는 매물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세입자에게 보장된 거주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 데다 실거주 의무가 강화되면서 입주 가능한 매물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고 봤다. 실거주를 원하는 매수인이 전세 낀 매물을 사려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이 발생하는 임대차 기간 종료 6개월 전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완료하거나 세입자에게 계약만료일에 퇴거하겠다는 동의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6·17 부동산 대책에 따라 규제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면 6개월 안에 전입해야 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에선 현실적으로 실수요자가 주택담보대출 없이 주택을 구입하기 쉽지 않은 데다 자금이 넉넉해야만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기 전에 계약을 완료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실수요자가 당장 입주할 수 있는 매물은 가격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함 랩장은 “차익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세 낀 집에 대한 메리트가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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